십자로에 놓인 대한민국호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대한민국의 운명이 십자로에 놓여 있다. 절벽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보수의 입장에서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그 염원을 실현했다고 할 수 있다. 외교안보 영역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한·미 동맹의 강화, 덧붙여 한·미·일 안보협력을 동시에 강화한 정부는 없을 것이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정부지출을 최대한 줄이면서, 경제안보시대에 발맞추어 동맹인 미국과 경제적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대미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노동과 교육현장에서는 정부의 권위를 최대한 세우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수호와 질서 회복을 위해 공권력을 최대한 동원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초유의 외부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생존과 번영의 버팀목이었던 미국이라는 존재가 국제적 위상 하락은 물론이고 국내적인 불안정과 혼란의 문턱에 서 있다. 국제적인 관여 의지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기대는 크게 약화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 바이든 정부가 제시하는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체제의 대결이라는 이념적 프레임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한국이 이 체제 대결의 ‘선봉대’를 자처하고 나선 느낌이다. 가치 외교를 전면에 내세웠다. 북한-중국-러시아를 권위주의 체제의 유사동맹으로 인식하면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진심이다.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도 25% 수준에서 최근 들어 20% 수준까지 급격히 낮추었다.

냉전과 같이 우적 구분이 명확했던 시기와는 달리, 현재 국제관계는 더 복합적이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변수가 너무 많다. 혹자는 신냉전이라 이 시기를 규정하면서 충돌과 대결의 측면을 강조한다. 북한이 유일하게 이 개념을 공식적으로 수용했다. 미국 바이든 정부와 유럽 주요국들은 중국이 체제 경쟁자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협력의 공간도 포기하지 않는다. 탈동조화가 아니라 리스크 완화가 핵심적인 대중국 정책의 기조라는 것이다.

주요 국가들은 적어도 외교안보와 경제를 적절히 분리하고, 경쟁과 협력을 배합하는 투트랙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한국 외교는 낡은 포도주 포대에 담긴 제법을 들고 만병통치약처럼 처방하기보다는 모든 가능성을 열고 신중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변수들로 구성된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국가적인 지혜를 모으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혼돈의 시대이다. 역사적으로 오늘날의 상황은 중국이 이미 2000여년 전 경험한 춘추전국시대, 서구가 500여년 전 종교전쟁을 거쳐 근대 국제체제를 구축하면서 경험한 250여년간의 치열한 적자생존 시대에 비견한다. 일본 역시 550여년 전 전국시대의 극심한 혼란상을 경험한 바 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지배적인 법칙이었다. 도덕과 이념은 생존과 지배를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이러한 경험이 DNA에 내재된 이들 국가의 외교안보 정책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들은 이중편승, 투트랙-다트랙 전략, 명목과 실제 정책의 적절한 혼용 등 만화경 같은 전략사고와 정책을 운용할 줄 안다.

마키아벨리는 혼돈의 시기 동맹에 대한 과도한 맹신에 대해 경고했다. 흔히 인용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멜로스의 운명은 시사하는 바 크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스파르타와의 동맹에 의지해 아테네에 맞섰던 멜로스는 결국 아테네군에 초토화됐다. 위기의 순간 스파르타는 아테네와의 전면전을 우려해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표방하는 ‘중추국가의 길’은 험난하다. 미국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수용하는 한 세계의 절반 이상이 되는 비민주국가들과의 관계가 절연된다. 통상으로 경제운용을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세계 절반 이상의 시장을 잃는 것이다. 서방 연합체인 주요 7개국(G7)에 맞선 브릭스(BRICS)의 경제 규모는 이미 G7을 능가했고, 그 격차는 더 커질 전망이다. 동북아 지역에서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갈등과 긴장에서 가장 수혜를 볼 집단은 북한이다. 우리 보수의 염원이 이뤄지는 순간 한반도는 가장 불안정한 상황에 직면하고,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커진다. 북한은 이제는 민족의 동일성보다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성을 강조하면서 핵 사용마저 위협하고 있다.

북·중·러는 국가 이해와 전략적 비전이 다르다. 한·미·일의 안보협력 강화는 필연적으로 이들 간 밀착도를 강화시킨다. 명과 암, 평화의 노력과 전쟁 위협의 증가가 동시에 얽혀 있다. 북·러는 이제 정상회담은 물론 군사경제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중국도 아직까지는 주저하나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북한은 9·9절 건국 75주년 기념행사에서 이들과의 연대를 성대하게 과시할 것이다. 동북아 신냉전 상황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의 최대 도전은 2024년 미국 대선에서 올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대외정책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신냉전적 정책으로 중국과의 대결은 더욱 고조시키고, 동맹국들의 참여 강화를 독려할 것이다. 반면 경제정책은 보호주의 성향을 강화할 전망이다. 대만의 국가성에 대한 인정 여부도 개연성이 커진다. 다음 우려사항은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 정부가 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의 경제 침체 여부이다. 중국은 현재 극심한 경제 침체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시진핑의 사회주의적 이념 경도와 밀접히 연관되고 있다. 그러나 당분간 이를 변경할 조짐은 없어 보인다. 중국 경제의 극심한 침체는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 된다.

다행히도 윤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세안 회의에 참석해 한·중·일 3국 협력을 강조하고, 한국의 대외정책이 중국을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점차 격화되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동시에 한국의 경제위기 가능성에 중국과의 대립보다는 관계 개선이 중요하다는 현실적 인식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연말에 개최 예정인 한·중·일 3국 정상회담도 성사시켜 윤석열 외교·안보 정책의 정점을 찍고 싶은 생각도 간절할 것이다. 다만, 서구나 일본과 같이 중국 역시 역사적으로 국제정치의 냉혹함과 자기중심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국가이다. 국가 간 상호 이해의 교환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을지와 양보할 수 있을지를 잘 결합하지 않으면,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운 게 윤석열 외교가 직면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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