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리스킹의 세계와 냉전장화하는 한반도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의 외교만사] 디리스킹의 세계와 냉전장화하는 한반도

역사는 예정된 것이 아니라 행위 주체들이 만들어간다. 한반도는 점차 냉전시대로 회기하고 있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양상은 더더욱 강화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북한 김정은 정권은 유일하게 현 국제정세를 신냉전 상황으로 규정하였다. 북한으로서는 신냉전이 그간 핵무기 개발로 인한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여 중국과 러시아 같은 강력한 우방을 확보하고, 경제·전략적 지원을 획득할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게 해준다. 북한은 이제 핵미사일 도발을 해도 국제적인 압박에 대한 염려가 없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응이자 한·미 핵확장 억제정책의 일환으로 미국의 전략핵잠수함이 부산에 입항하자 지난 7월20일 북한 강순남 국방상은 담화문을 통해 이러한 상황은 2022년 9월 공포한 ‘핵무력정책 법령’에 의거하여 핵을 사용할 조건에 해당한다고 대놓고 협박하였다. 북한은 7월27일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계기로 러시아 및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하였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임에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파견하였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신중한 태도를 취하면서 격이 낮은 리훙중 전인대 상무부위원장을 파견했지만, 시진핑 국가주석은 축전을 통해 중·북이 피로 맺어진 인연임을 강조하였다. 이는 시진핑 시대 중국이 북한과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추구하면서 공개석상에서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았던 개념이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은 이러한 혈맹관계 표현에 적극 호응하였다.

윤석열 정부가 2023년 발행된 국가안보전략보고서나 그간 주요 지도자들의 언행을 보면 실제 신냉전적인 국제정세관을 이미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을 적극 강화하고, 국내정치적인 부담과 무리수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입장을 전폭 수용한 대일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이 희망하는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를 국가안보 정책의 핵심으로 수용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만간 미국을 방문하여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함께 캠프 데이비드에서 중·러·북 권위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한·미·일 협력체제의 구축을 더욱 강화하는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역대 최상의 한·미, 한·일관계로 평가된다. 미·중 전략경쟁 시기 일변도 외교의 강화는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적 관계의 강화로 전이된다. 이는 윤 정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간에 향후 한반도 냉전구도는 더욱 강화될 것이고,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포함한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은 크게 제고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국제관계를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로 인식하는 이분법적인 프레임을 제시하였다. 권위주의 체제에 대항하여 민주주의 국가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단합하여 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 스스로는 미·중관계를 신냉전이라기보다는 장기적인 전략적 경쟁관계로 규정하였다. 여기에는 충돌-경쟁-협력이 공존한다. 바이든 행정부 초기 대중정책은 협력에 비해 경쟁과 충돌이 더 주가 되는 듯이 보였다. 백악관 NSC 인도·태평양 조정관 커트 캠벨, 백악관 NSC 중국 담당관 루스 도시, 상무부 장관 지나 러몬도 등이 ‘탈동조화’, 탈중국 압박 리스트 강화 등 공세적인 대중 전략을 주도하였다. 미·중 충돌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공격적 현실주의자인 존 미어샤이머 교수나 공화당의 주요 전략가들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의 대중 전략에 미묘한 변화가 일고 있다.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은 지난 4월 그간의 대중 전략으로서 ‘탈동조화’ 개념 대신 대중 강경파였던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이 제시한 ‘위험회피’ 개념을 전격 수용하였다. 일부 논자들은 두 개념 간 차이가 없다고 하지만, 폰데어라이엔의 ‘위험회피’ 전략은 중국을 냉전적 대상으로 상정하거나 과도한 충돌은 불가하다는 독일 및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의 입장을 명백히 반영한 개념이었다. 대중 및 대러 전선의 약화를 우려한 미국으로선 마지못해 수용한 것이다. 미국의 매파들이나 중국이 다 같이 ‘탈동조화’나 ‘위험회피’ 두 개념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없다고 인식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등은 중국과의 전면적인 충돌이나 탈동조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제한된 갈등과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온건파라 할 수 있다. 2024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이나 민주당의 입장에서 중국과의 전면 충돌은 경제적 재앙이며, 대선에서의 필패를 의미한다. 당장 전례없는 재정 적자에 시달리면서, 막대한 채권의 이자를 경감하고, 새로운 채권을 팔아야 하는 옐런의 입장에서는 중국과 다툴 여력이 없다. 미국은 절박하다. 중국은 이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바이든 행정부에 대중 무역제재의 전면적인 해제를 요구하면서 압박하고 있다.

현재의 미국은 전략적 조율 역량이 강한 리더십, 필요한 규범과 규칙의 제정, 강력한 경제·산업 역량이 크게 약화되었다. 세계화로 상징된 전면적 자유주의 해법은 이미 그 기능이 다했다. 제한된 목표와 방어적 본질을 지닌다고 설파한 방어적 현실주의는 중국의 야심과 공세 앞에 적실성을 잃었다. 불가피한 충돌을 예고하는 공세적 현실주의의 미래는 너무 암울하고, 그 대안도 없다. 트럼프의 재선 성공과 공세적 현실주의로 무장한 공화당의 전략가들이 대중 정책을 지휘한다면 세계는 더 안정적일까? 그리고 미국은 효과적으로 중국에 대응할 수 있을까? 답이 없다.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어갈 구조적 역량을 어느 국가도 보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세계는 기존의 서방중심 질서,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브릭스(BRICS)의 부상, 그리고 그 중간지대에 놓인 글로벌 사우스(Golbal South·남반구에 위치한 개발도상국들) 사이에서 혼돈의 시기를 맞이할 것이다. 공급망 교란은 극심하고, 경제위기는 물론 군사적 긴장과 충돌로 인한 안보적 위기가 동시에 다가올 것이다.

한반도는 더더욱 불안정해진다. 소모전과 장기전에 들어간 우·러 전쟁에서 미국과 서방은 이기기 어렵고, 중국의 장기전에 대만과 한반도가 우려스럽다. 미국 중심의 일변도 외교를 추진하는 윤석열 외교는 다른 대부분의 국가들처럼 당장 내년 미국의 대선 이후 다가올 미국발 정책 변화와 위험 강화, 우·러 전쟁과 중국·러시아발 경제위기, 공급망의 다변화, 북한발 핵위협 등 복합위기에 대응할 좀 더 유연한 시나리오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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