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에 손 놓은 한국, 이대로 가면 망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대상으로 한 흉기난동 사건으로 우리의 삶이 무너졌다. 정부는 범죄예방-현장대응-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방안을 내놓았다. 특히 피해자 보호와 관련해 국가·지자체·시민이 합심해 피해자 원스톱 솔루션, 피해자 지원 등 종합적인 대책이 제시되고 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마약으로 다시 한국 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경찰공무원이 집단 마약 파티에 연루된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에서 외국인 포함 21명이 집단으로 마약을 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장소에 마약을 단속해야 할 경찰공무원이 있다가 추락사했다.

현직 공무원의 마약 밀수·유통·투약 등은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범죄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공무원은 67명에 이른다. 지난해 10월에는 경기도 공무원이 외국 공항에서 코카인 2.5㎏을 밀반입하려다 현지 사법당국에 체포됐다. 2018년 1월엔 교정직 공무원이 케타민 0.27g과 엑스터시 2정을 밀반입하려다 체포됐다. 2017년 7월엔 초등학교 교사가 온라인 앱을 이용해 필로폰을 구입해 투약하다 체포됐다. 지자체, 교육청, 교육부, 과학기술통신부, 법무부, 경찰청, 국방부, 소방청, 국회, 국세청 등 거의 모든 공무원 사회에 마약사범이 존재하는 모습이다.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시점이다. 공직이 무너지면 끝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다종의 마약을 투약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에서 람보르기니 차량을 주차하던 중 흉기로 협박하고 달아난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CCTV를 분석해 사건 발생 3시간 후에 가해자를 체포했다. 가해자는 필로폰 등 3종의 마약류에 대해 양성반응을 보였다.

지난달 2일엔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피해자를 구하지 않고 도주한 혐의로 체포된 피의자 역시 케타민 등 7종의 마약류를 투약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들이 폭력조직과 관련된 정황도 나왔다. 특별한 직업이 없는 사람이 수억원에 달하는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녔다. 분명 냄새가 난다. 자금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폭력조직과 관련된 사실이 밝혀지면 이들 조직을 일망타진하고 불법수익을 모조리 환수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들에게 마약류를 제공한 곳이 바로 병원이란 점이다. 일부 병원이겠지만 병원이 마약을 제공하는 성지가 된 것이다. 마약류 과다 처방으로 적발된 병원이 지난 한 해에만 89곳으로 최다를 기록했다. 이뿐 아니다. 의사 셀프 처방, 마약류의 도난 분실도 심각한 수준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을 더 촘촘하게 만들고, 국회는 의약품 안전사용 정보시스템을 신속하게 입법해야 한다.

올해 3월 중학생 딸이 마약을 했다는 엄마의 신고가 있었다. 실제 중학생 딸은 텔레그램을 통해 필로폰 0.05g을 40만원에 구입해 투약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마약 유통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가상자산으로 구입하고, 속칭 ‘던지기 수법’으로 유통된다. 가장 안전해야 할 아이들의 공부방에서 ‘맞춤형 마약’을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마약 수사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중학생 공부방에서 마약을 구입할 수 있고, 병원이 마약 투약의 성지가 되고, 공무원이 마약을 유통하는 걸 내버려 두면 나라는 망한다. 수사 조정에 문제가 있으면 함께 수사하면 된다. ‘마약수사청’이 필요한 이유다.

국가정보원과 관세청이 국경을 차단하고, 보건복지부가 투약자 재활을 담당하고, 국세청과 금융정보분석원이 불법수익을 환수하려면 범정부 기관인 ‘마약청’ 설립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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