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주4일제 실험에서 배운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생존 단계에서 벗어나 자아 발전의 시간’, ‘실수하지 않고 마음을 쏟아 일하는 시간’, ‘불안과 슬픔이란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 지난 11일 세브란스 주4일제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간호사의 이야기다. 10분 남짓한 현장 발언이었지만 뭉클했다. 단지 하루 더 쉬는 것뿐인데 한 개인의 삶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1년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병원 특성상 간호사는 교대제 근무 형태로 일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과 야간 근무까지 감내해야 하고, 시간 부족으로 끼니조차 제때 먹지 못하고 일할 때가 다반사다. 그렇기에 간호사의 높은 업무 강도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간호사 10명 중 7명은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쳐 있어 이직 생각을 갖고 있다. 다수의 간호사들은 처음 병원에 들어왔을 때는 그냥 몇년만 버티고 나가자는 생각을 한다. 이런 이유로 간호사 평균 근속기간은 7.5년에 불과하다. 불규칙한 교대 근무는 개인이 오랜 시간 감당하기에는 벅찬 조건이다. 병원 간호사 이직률 15.2%는 전체 산업의 3배나 된다. 왜 우리는 그동안 간호사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개선하지 못했을까. 코로나19 시기 정부는 간호인력 충원과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2021년 9·2 노·정 합의 이후 예측 가능한 교대제와 교육 전담제 등이 추진되고 있으나 미흡하다.

세브란스 주4일제 사례에서 다양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교대제, 야간·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4일제 시행 이전과 비교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간호사 ‘번아웃’과 퇴사·이직 의도가 감소했다. 의료사고 위험성은 낮아졌고, 환자 응대와 서비스 질은 향상됐다.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의견과 내일 출근하기 싫다는 의견이 대폭 감소했다. 단 하루지만 취미나 여가활동에 1시간8분 정도 더 할애할 시간이 생겼고, 자기 모색을 위한 시간에 44분을 더 쓰고 있다. 매년 3~6명의 간호사가 퇴사했던 병동에서 올해는 퇴사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 주4일제는 개인의 연간 노동시간 단축(469시간20분)은 물론 출퇴근 교통시간 절약(52시간36분)과 같은 간접적인 효과도 확인된다.

향후 장시간 노동 해소와 건강,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과제로 ‘주4일제’와 같은 근무 형태를 모색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난 6월22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간호사 노동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주요 내용은 환자 대비 간호사 인력과 배치, 장시간 노동과 교대제 관련 처우 개선, 적정 직무 교육훈련, 심리지원 체계였다. 병원 간호사들이 더는 일터를 버리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최근 한 조사에서 10명 중 5명은 주4일제를 우선적으로 도입해야 할 곳으로 ‘교대제 장시간 노동을 하는 곳’이나 ‘산업재해 및 위험성이 높은 곳’을 꼽았다.

세브란스는 주4일제 실험과 연구조사를 노사 간 단체협약을 통해 추진한 첫 사례다. 주4일제 논의는 아이슬란드, 스페인, 벨기에 등 해외 사례가 소개되면서 본격화됐다. 스코틀랜드나 미국 캘리포니아 같은 일부 지방정부에서도 주4일제 논의가 진행 중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균형 있는 노동시간 편성(1999년), 괜찮은 노동시간 원칙(2017년, 2019년)과 함께 간호사의 중단 없는 휴식과 연차휴가 개선조치도 권고한 바 있다. 핀란드는 간호사 주 48시간 이상 노동 규제를, 프랑스는 고령 간호사 노동시간 경감조치를 하고 있다.

세브란스 주4일제 실험에 참여한 간호사의 이야기에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도 찾을 수 있다. “불과 몇개월 안 되지만 하루 더 쉬는 것뿐인데 삶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기고, 불안·슬픔 등 마음의 병을 치유할 시간이 주어졌어요.” 노동자 건강과 일과 삶의 균형은 이런 실제 사례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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