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어쩌다 보니 책과 출판을 말하는 자리에 꾸준히 나가게 되었고 어느덧 그 시간이 10년을 훌쩍 넘었다. 이맘때면 올해의 출판 트렌드와 내년을 전망하는 자리가 꾸준하다. 책을 출간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내년에 나올 책들은 목록뿐 아니라 대략의 일정까지 결정되어 있을 터, 실제로 내년에 세상에 나와 독자를 만날 책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면 훨씬 구체적이고 예측 가능한 미래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자료 취합 과정과 각 출판사의 정보 공개 상황 등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일이겠다. 각 언론사와 몇몇 서점에서 개별 자료를 취합하여 전하는 소식 정도로 아쉬움을 달래며, 실제로 나올 책과는 꽤 멀어진, 그래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기 어려운 전망에 머무르곤 한다.

공중파 TV 프로그램에서는 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방송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지식교양 프로그램에서 종종 출연자가 주제에 부합하는 책을 추천하는 경우라거나 책과 무관한 방송이지만 유명한 인물이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오며 화제를 모으는 경우는 있지만 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라디오에서는 아직 책만으로 방송 시간을 가득 채우는 프로그램이 방송사별로 한 개 정도씩 남아 있고, 다른 경우 라디오 방송의 특성상 일주일 내내 진행되는 일이 잦으니 영화나 음악과 더불어 일주일의 하루를 맡는 고정 꼭지로 다뤄지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개 진행자와 제작진이 해당 도서를 미리 읽고 고민할 시간이 충분치 않은 현실이다. 매주 한 권의 책을 읽는 건, 게다가 읽고 싶은 책도 아니고 소개를 위해 읽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보니 책을 소개하는 출연자 중심으로 독백처럼 흐르기 십상이다.

물론 모든 이야기는 정해진 시간과 공간 위에서 이뤄지는 법이고, 책을 있는 그대로 다 읽는 것 외에 책을 소개하거나 전하는 더 나은 방법이 있을까 하는 본질적 물음도 있지만, 책을 말하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에 더 쉬운 책을 골라달라는 반응이 더해지면 고민이 깊어진다. 어디서 책을 이야기하든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어려운 책은 피하고 쉬운 책을 골라달라는 요청인데, 물론 어려운 책을 흥미롭게 소개하지 못하는 나의 능력 탓이기도 하겠지만, 책에 대한 강박과 압박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런 경험을 거쳐 이르게 된 소박한 기대는 당연히 나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곧 사거나 읽게 되는 장면이 아니다. 언젠가 우연히 혹은 운명적으로 그 책을 만나게 되었을 때,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더라도 이 책을 전한 목소리를 반갑게 떠올리는 장면이라 하겠다.

이런 경험에서 책과 출판을 아우르는 이 지면은 내가 의도를 구현했느냐와 무관하게 신기했다. 출판업을 두고 업계인들조차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란 말을 습관처럼 내뱉곤 하는데 이제 이 말은 책임지지 않을 것이고 도전하지 않을 거라는 의미로 들린다. 새로운 시도와 도전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이를 소개하고자 노력했다.

책과 출판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깊게는 사회, 국가, 세계라는 공동체의 층위가 있겠고 곁으로는 다른 문화 산업을 떠올릴 수 있겠다. 책과 출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독특하거나 전에 없던 현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어떤 일이든 다른 문화 산업과의 연계 속에서 고려되고 논의돼야 원인도 해법도 찾아낼 수 있을 테고, 지구란 공간에서 살아가는 문명과 생명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살피지 않는다면 어떤 극약 처방도 책과 출판을 구해내지 못할 것이다. 책과 출판을 말하는 어떤 자리에서든 이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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