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치는 증오·혐오에 미쳐 돌아가나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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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세계가 있다. 하나는 정치권력을 갖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계다. 다른 하나는 더럽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정치 근처에 얼씬거려선 안 된다고 믿으며, 그런 믿음을 실천하는 세계다. 둘 다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렇게 양분된 세계가 우리 현실이다.

윌 로저스라는 미국 코미디언이 오래전 그렇게 양분된 세계의 핵심을 건드리는 한마디를 남겼다. “선거에서 최고의 사람이 선출되기를 바라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사람은 출마를 하지 않는다.” 영국 정치학자 브라이언 클라스의 <권력의 심리학>이란 책은 바로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그는 자신을 정치학자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이 대개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왜 그렇게 끔찍한 사람들이 리더가 되는 걸까요?”

우리는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해 이미 예비된 답을 갖고 있다. “구조와 상황이 문제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일지라도 정치판에 들어가면 타락하기 쉽다.” 개인보다는 상황이 더 중요하다는 이론들을 가리켜 ‘상황주의’라고 하는데, 이 분야의 대표적 연구로 꼽히는 게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의 1971년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다.

대학의 심리학부 건물 지하에 가짜 감옥을 만들고 지역신문을 통해 ‘죄수’와 ‘간수’ 역할을 맡을 실험 참여자를 모집했다. 모두 72명이 지원했는데, 이들 중에서 ‘정상’과 ‘건전’을 기준으로 삼아 부합하는 21명을 선발했다. 2주간 하려고 했던 실험을 6일 만에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정도로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짐바르도는 “대부분의 피험자들은 진정한 ‘죄수’나 ‘교도관’이 되고 말았으며, ‘역할 수행’과 ‘자아’를 더 이상 분명히 구분할 수가 없게 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죄수’인 학생들은 자기가 살기 위해 그리고 교도관에 대한 끓어오르는 증오심을 이기지 못해 도주만 생각하는 비굴하고 비인간적인 로봇이 된 반면, ‘교도관’인 학생들은 ‘죄수’ 학생들을 마치 저질의 동물처럼 다루면서 잔인한 짓을 즐기고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을 보고, 실험자들은 공포에 질렸다.”

가학적인 사람이 ‘권력’ 추구?

이 실험 결과는 그간 수많은 사람에 의해 상황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었다. 이 실험에 대한 의문은 36년 후인 2007년에서야 제기되었다. 웨스턴켄터키대학 연구진은 짐바르도가 지역신문에 낸 “감옥 생활에 대한 심리학 연구에 참여할 남자 대학생 모집”이라는 광고 문구에 주목하면서 ‘감옥’이라는 단어 하나가 연구를 완전히 왜곡시킨 건 아닌지 의심했다.

그래서 ‘감옥 생활에 관한 심리학 연구’라고 쓴 광고와 단지 ‘심리학 연구’라고만 쓴 광고를 만들어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철저한 인성 평가를 진행했다. 그러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감옥 실험 광고에 자원한 사람은 일반적인 연구에 자원한 사람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은 공격성, 권위주의, 권모술수주의, 자기도취증, 사회지배성을 보였으며, 유의미하게 낮은 기질적 연민과 이타주의를 보였다. 클라스는 이런 실험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이 발견은 권력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결과를 뒤집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평범한 사람도 권력을 잡으면 가학적으로 변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가학적인 사람이 권력을 추구한다는 걸 입증하는 것일 수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거꾸로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권력은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힘이 아니라, 악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석일지도 모른다. 이 공식대로라면 권력은 부패하는 것이 아니라 부패를 끌어당긴다.”

물론 이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 문제는 정치의 ‘진입장벽’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권력을 획득하고 누리는 과정을 험난하고 추악하게 만들거나 이미 그렇게 돼 있는 걸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그걸 견뎌낼 수 없는 선량하거나 온건한 다수의 사람을 배제하는 효과는 없겠느냐는 것이다. 권력이 악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석이라기보다는 그런 진입장벽을 넘어설 각오와 멘털을 가진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석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금배지 위해 ‘충성투자’는 필수

총선 공천 시즌을 맞아 공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물 정치인의 눈에 들려고 애쓰는 정치인들의 몸부림을 보라. 자신을 극도로 낮추면서 충성을 다하겠다는 뜻을 드러내는 몸부림은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그렇지만 반대편을 향한 증오와 혐오를 부추기는 거친 언어를 남발하는 식으로 충성의 뜻을 보이는 행태는 혀를 끌끌 차는 정도를 넘어 측은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금배지를 새로 달거나 계속 유지하려면 그런 정도의 ‘투자’는 필수라는 걸까?

클라스는 독재자가 자신에 대한 숭배를 요구하는 것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습득한 핵심적인 목적이 있다며, 그건 바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을 분류하는 충성심 테스트라고 말한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권력자에 관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입 밖에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권력자의 신뢰를 받아도 좋을 사람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재자들만 충성심 테스트를 하는 건 아니다. 민주 국가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다시 정치인들의 공천 투쟁을 보라. 강한 충성을 과시하려면 발언 수위는 낯 뜨겁고 위험할수록 좋다. 이런 행태가 자주 벌어지면서 반복되다 보니 언론마저 그러려니 하고 익숙하게 여긴다. 게다가 언론은 선호 진영에 따라 주로 상대 진영 리더들만을 비판하며, 상대 진영에서 끔찍하다는 평판을 얻은 자기 진영 리더들에 대해선 호의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부끄러움을 느낄 가능성은 더욱 줄어든다.

정치와 언론 탓만 할 일도 아니다. 유권자들도 다를 게 없다. 다수는 진영의 포로일 뿐 진영을 뛰어넘어 생각하길 싫어한다. 자꾸 여론조사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이슈건 물으나 마나다. 진영에 따라 예정된 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동성이 있는 무당층 10~20%의 의견을 묻는 게 여론조사의 본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클라스가 제기하는 의문도 이런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는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권력에 이끌린다고 치더라도, 왜 그런 사람들이 그다지도 쉽게 권력을 쥐게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또한 인간으로서 모종의 잘못된 이유로 잘못된 사람에게 권력을 주는 데 이끌리는 것은 아닐까? … 집단토론에서 더 공격적이고 무례한 사람이 더 협조적이거나 온화한 사람보다 더 강력하고 리더 같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 몇몇 연구를 통해 드러났다. … 우리는 인간으로서, 어째서인지 악한 이유로 악한 리더에게 이끌린다.”

우리는 집단착각에 빠져있어

하긴 “나쁜 놈이 일을 더 잘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물론 모든 정치인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법칙은 아니다. 상대 진영 정치인을 향해선 법과 도덕을 추상같이 요구하지만 우리 진영 정치인에겐 이른바 ‘의도적 눈감기’로 대응한다. 마주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두려운 진실은 한사코 회피하면서 상대편에 대한 증오와 혐오로 그 불편함을 해소하려고 든다.

그럼에도 세상은 진보를 향한 전진을 멈추지 않고 조금씩이나마 변화된 모습을 보여왔다. 그런데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로 대변되는 디지털 혁명이 정치를 극단적으로 타락시키는 동력으로 등장하는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런 새로운 미디어가 공론장마저 같은 편끼리만 모이는 곳으로 재편성하면서 증오·혐오의 발산에 미쳐 돌아가는 팬덤정치가 정당까지 지배하고, 이에 따라 끔찍한 사람들이 리더로 부각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뉴욕타임스 기자 맥스 피셔가 최근 출간한 <혼란유발자들: 인간심리의 취약점을 이용하는 소셜미디어의 뒷이야기>라는 책은 소셜미디어와 유튜브가 증오·혐오 정치를 선동하는 미국의 현실을 잘 그려내고 있다. 물론 한국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인간의 두뇌가 불화에 끌리는 성향을 악용하는 알고리즘”에 이용당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증오·혐오가 온전히 양심과 지성에 따른, 정의를 향한 의분인 것처럼 믿는 집단착각 상태에 빠져 있다. 이 집단착각에서 탈출하지 않는 한 선량한 사람들 사이 증오·혐오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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