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순애보’를 어찌할 것인가

[강준만의 화이부동] 윤석열의 ‘순애보’를 어찌할 것인가

1961년 4월17일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장비도 허술한 쿠바인 1400여명이 쿠바 피그스만 해안에 상륙했다. 이들은 미국에 망명 중인 반(反)카스트로 세력으로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미 해군·공군·CIA의 지원을 받아 나선 것이었지만, 상륙 이틀 만에 쿠바군에 진압당하고 말았다. 참담한 실패 후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내가 어쩌다 그런 어리석은 계획을 추진했을까”라고 한탄했다.

이 사건에 자극을 받은 예일대학의 심리학 교수 어빙 재니스는 훗날 어떻게 자타가 인정하는 우수한 두뇌집단이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면서 ‘집단사고(groupthink)’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재니스는 ‘집단사고’를 “응집력이 강한 집단의 성원들이 어떤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사고의 경향”이라고 정의하면서 “집단 내부의 구성원들 사이에 호감과 단결심이 크면 클수록, 독립적인 비판적 사고가 집단사고에 의해 대체될 위험성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고 했다.

그 침공계획에 의심을 품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행여 ‘온건파’라는 딱지가 붙을까봐 두려워 입을 닫았다는 게 나중에 밝혀졌다. 케네디 행정부에 브레인으로 참여해 이 사건을 의사결정 단계부터 지켜본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몇년 후에 출간한 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변명은 당시의 토론 분위기가 나로 하여금 몇몇 소극적인 질문들을 제기하는 것 이상으로 그 터무니없는 일에 반대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리스크’ 키운 데 집단사고도 일조

지난해 12월28일 ‘김건희 특검법’의 국회 통과 이후 달아오른 관련 논쟁과 논란을 지켜보면서 새삼 집단사고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를 그렇게까지 키운 데엔 집단사고도 일조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 때문이다. 한국의 관료와 참모들은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면서 절대 복종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집단사고라는 개념이 나온 미국의 사정과 다르지 않느냐는 반론이 가능하겠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미국도 크게 다르진 않다.

분위기 탓을 한 슐레진저의 소극적인 질문마저 가로막고 나선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케네디의 동생이자 법무부 장관인 로버트 케네디였다. 그는 슐레진저를 따로 불러 이렇게 경고했다고 한다. “당신 생각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대통령은 이미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세요.”

‘김건희 특검법’은 그간 ‘김건희 리스크’를 방치하면서 사실상 키워온 대통령 윤석열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새로운선택 창당준비위원장 금태섭이 지난해 12월11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한 말을 들어보자. 그는 “제가 (대선) 캠프에서부터 보면 그건(김 여사 이야기는) 정말 금기고, (당시) 제가 몇번 얘기했는데 (윤 대통령이) 말씀을 안 들으셨다”고 말했다. ‘캠프 때도 김 여사 문제를 지적했다는 말인가’라고 사회자가 다시 묻자, 금태섭은 “그렇다”며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전혀, 화를 내면서 그냥 넘어가 버리는데, 정말 이걸 깨지 않으면 선거를 치를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듯 윤석열에게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절대 금기였다. 한겨레 논설위원 강희철이 12월8일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인가”라는 칼럼에서 전한, 윤석열의 옛 동료들이 토로한 걱정과 우려의 말도 비슷하다. “ㄱ 전 검사장을 비롯해 그간 여사 문제를 거론한 사람은 단 한명도 예외 없이 대통령에게 손절을 당했다. 누가 감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나.” “대통령이 이혼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여사 문제는 정리 못할 것이다.”

윤석열은 이번 4월 총선에서 승리하면 ‘김건희 리스크’도 해소할 수 있을 거라는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김건희 리스크’ 때문에 4월 총선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게 객관적 현실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사실 문제의 핵심은 윤석열이 ‘김건희 리스크’의 본질과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모두 다 알고 있다시피 ‘김건희 리스크’는 김건희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 문제다.

윤석열은 “50살이 다 돼서 아내를 만나 결혼한 것”을 인생의 가장 기쁘고 행복한 순간으로 꼽았다. 단지 그것뿐이겠는가? 차마 입 밖에 내진 못하지만 대통령이 된 것도 아내 덕분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사실상 아내의 권력 지분을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에게 아내는 자신의 보잘것없던 삶에 나타난 찬란한 빛으로 영원히 섬겨야 할 우상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그간 ‘김건희 리스크’가 법적 문제뿐만 아니라 언론의 부정적 기삿거리로 수십번 불거지면서 자신의 지지율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음에도 윤석열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구경만 한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사랑은 아름답다. 맹목적일수록 더욱 아름답다. 사랑의 대상을 우상으로 숭배하거나 추앙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윤석열의 러브 스토리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유형의 이야기라는 뜻의 ‘순애보(殉愛譜)’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게다. 하지만 이 아름답고 좋은 일에도 지켜야 할 선은 있다. 공사(公私)의 구분이다. 윤석열은 바로 여기서 실패했다. 그에겐 아내의 심기 보호가 국정운영보다 더 중요했다. 국정운영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내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에겐 분노하면서 아예 입조차 열지 못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저런 사람이 대통령을 하려고 했지? 대통령 자리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저러는 걸까?

여당 정치인들 이젠 직언해야

많은 유권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분노했다. 윤석열의 지지율이 30%대에 묶인 결정적 이유다. 2년 전 “제가 없어져 남편이 남편답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라며 울먹였던 김건희는 “과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남편과 더불어 자신의 약속을 어겼다.

국민은 야당이 추진한 ‘김건희 특검’이 총선을 겨냥한 얄팍한 정략이라는 걸 몰라서 지지하는 게 아니다. 2022년 8월22일 야당의 강경파 의원들이 ‘김건희 특검’ 법안을 발의했을 때만 해도 야당 내부에서조차 역풍 분다며 반대 목소리가 나올 만큼 지나친 계략으로 여겨졌다. ‘김건희 특검’의 가능성은 여론에 달린 문제였다. ‘김건희 특검’에 대한 찬성 여론은 코리아리서치가 MBC 의뢰로 9월7~8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62.7%, 넥스트리서치가 SBS 의뢰로 8~9일 진행한 조사에선 55.0%로 나왔다. 의외로 높은 찬성률이었다. 윤석열 부부는 그 위험을 감지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게 조심 또 조심했어야 했다.

윤석열은 대선 승리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특별감찰관제 재가동을 지시했다가 대통령 취임 후 이를 번복했다. 왜 그랬는지 짐작이 가는 일이었지만, 윤석열은 뒤늦게나마 반성하면서 특별감찰관제 재가동을 지시했어야 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김건희 역시 달라진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특검 찬성 여론이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지난해 9월13일에 경악을 금치 못할 사건이 일어났다. 김건희의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명품백이 전달됐다! 이 장면을 찍은 ‘몰카’ 영상이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1년2개월이 지난 2023년 11월27일에 공개된 것이다. 민주당이 한 달 후 특검법을 통과시킨 건 여론을 등에 업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을 게다. 엽기적인 ‘정치공작’이었을망정, 국민이 더 놀란 건 71억원의 자산가이자 대통령 부인이라는 사람이 크게 화를 내면서 명품백을 돌려준 게 아니라 일단 받았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이미 결심을 했으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건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통용되는 권력의 법칙이자 집단사고의 원인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결심이 공멸의 길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게 분명해진 이상 이제 여당 정치인들은 스스로 보신주의적 집단사고의 수렁에서 빠져 나와 정중한 직언으로 대통령의 어리석은 집착을 교정해주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게 나중에 등을 돌리며 비난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더 떳떳하지 않겠는가.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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