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기념관 설립 적절한가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우리 사회는 2007년 대통령기록물법 제정 이후 대통령기록관과 ‘전직대통령법’에 의한 대통령기념관(혹은 도서관)이 공존하게 되었다. 기록은 가치중립적이며, 사료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 풍부할수록 각종 연구와 문화적 콘텐츠 개발에 도움이 된다. 대통령기록관은 법에 의해 엄격히 관리하며 그 비용도 전액 국가 예산이다.

기념은 특정 대통령을 미화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며, 부정적 평가 사료에 대해서는 수집 및 전시를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통령의 집권 기간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지역과 시민들이 있다면 ‘기념관’은 그들의 상처를 계속 노출시키는 격이 된다. 이런 이유로 ‘전직대통령법’에는 국가는 기념관 설립을 주도하지 않으며 일부 사업비용과 문서 및 도화 등 전시물을 지원할 뿐이다. 이것이 기록관과 기념관이 구별되는 점이다.

이승만기념관 설립 논의가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송현광장에 이승만기념관을 지을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해 큰 논란이 벌어졌다. 기념관 설립 사업을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주도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기념관 설립 취지에 맞지 않을뿐더러 부적절하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나뉘고 있는데, 대한민국 가장 중심지에 서울시가 부지를 제공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다. 송현광장 일대는 수많은 시민들이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며 이승만 정권에 의해 희생된 곳이다. 오세훈 시장은 수유리에 안장되어 있는 4·19혁명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뭐라고 변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헌법 전문에 버젓이 있는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는 어떻게 하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54년 대처승 등을 사찰에서 퇴출하라고 요구한 정화유시로 인해 불교계에 갈등을 유발시켰으며, 그 후유증은 수십년 동안 지속되었다. 송현광장 근처에는 조계사와 태고종 총무원이 있다. 조계사는 지난 2월 ‘국민 화합을 저해하고 종교 간 갈등을 부추기는 기념관 건립계획을 즉각 중단하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제주 4·3사건 단체 등의 반발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기념관 사업에 국가보훈부와 서울시가 나서자 발생하는 일이다.

미국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미국 대통령기록물법은 1955년 제정된 이후 1986년 개정안에 대통령 기념도서관이 각종 표준에 따라 건축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기부금 조항을 두었다. 대통령기록관(도서관)을 설립하고자 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연방정부에 출연기여금을 요청할 수 있다. 미국의 개별 대통령기록관은 기념관 및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대부분 기록관을 의미한다.

이 원칙에서 예외가 있었는데 바로 37대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이다. 닉슨도서관은 1990년 7월 개관했는데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한 부정적인 평가로 인하여 민간단체 모금으로 150억원을 모았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순수한 민간 주도 도서관을 설립한 것이다. 닉슨도서관은 공식 대통령기록관으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2007년 국립 미국기록관리청 소속 대통령기록관으로 편입되었다.

2019년에는 닉슨이 사임한 지 10개월 뒤인 1975년 6월23~24일 11시간 동안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진행된 대배심 증언의 녹취록과 재임 당시 백악관 참모들과의 대화 내용이 담긴 음성 테이프 등 워터게이트 관련 자료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닉슨의 부정적 모습이 담긴 내밀한 기록까지 공개한 것이다.

이승만기념관은 전직대통령법에 따라 지지하는 사람들이 설립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국가가 주도하는 기념관 설립은 지양되어야 하고,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른 설립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의 역사적 평가는 기념관으로 대신할 수 없고, 연구자들의 몫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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