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기사단을 생각하며

심완선 SF평론가

돌고래는 복잡한 언어를 사용하는 지적 생명체이며 돌고래와 대화가 가능하리라는 생각은 한때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1961년 미국 그린뱅크의 국립전파천문대에 모였던 10명의 과학자도 그중 일부였다. 프랭크 드레이크, 칼 세이건 등을 포함한 이 모임은 외계 지적 생명체를 탐색하는 SETI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었다. 당시 참석했던 존 C 릴리는 다른 종과의 의사소통을 연구하며 특히 돌고래에 빠져 있었다. 참석자들은 돌고래 이야기에 매혹되는 한편, 돌고래의 언어를 해석하는 일이 외계 신호 연구에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다. 전혀 다른 두 지성체 간의 소통을 시도한다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는 ‘드레이크 방정식’을 만들고, 비공식적으로는 ‘돌고래 기사단(The order of the Dolphin)’을 결성했다. 농담 같지만 유명한 일화다.

종간 격차를 뛰어넘은 교류에는 감동적인 면이 있다. 미국의 SF 작가 아서 C 클라크는 비슷한 시기에 <돌고래 섬의 모험(Dolphin Island)>(1963)을 출간했다. 작중 주인공 소년 ‘조니’는 태평양에 표류되었다가 ‘바다의 사람들’인 돌고래들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는 돌고래의 인도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 있는 어느 연구소에 도착한다. 그곳은 마침 돌고래와의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곳이었다. 외로웠던 조니는 과학자들과 함께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돌고래와 깊은 유대를 맺으며 성장한다.

다만 작중에서 해양생물을 실험체로 대하는 태도는 지금 읽기에는 거북하다. 존 릴리의 실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돌고래에게 환각제인 LSD를 사용하거나 생체 해부를 병행했다. 돌고래 연구 자체가 돌고래를 감금하는 일이기도 했다. 연구 자금이 삭감된 후 릴리는 돌고래 ‘피터’를 기존보다 작고 어두운 마이애미의 탱크로 옮겼는데, 그곳에서 피터는 스스로 호흡을 멈추고 자살했다. 이외에도 릴리의 연구는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갈수록 그는 과학보다 사악한 고대 외계인에 대한 사이비 이론에 치중했다. 이후 반세기가 지났지만 릴리의 예측과 달리 돌고래의 언어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동물에게 인간의 말을 가르치려는 시도는 번번이 초보적인 수준에서 끝났다. 이제 돌고래와의 대화는 외계 지적 생명체와의 통신만큼이나 낙관적이고 낭만적인 발상으로 보인다.

그래도 영리한 돌고래의 이미지는 여러 SF에 남았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돌고래가 인간보다 먼저 지구 멸망을 내다본다고 설정한다. 돌고래는 경고를 전하려 하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좀처럼 메시지를 알아듣지 못한다. 결국 돌고래는 ‘안녕, 물고기는 고마웠어요’라는 작별인사를 남기고 지구를 떠난다. 데이비드 브린의 <스타타이드 라이징>이나 댄 시몬스의 <히페리온>에도 돌고래 종족이 등장하며, 듀나의 <항상성>은 돌고래에게 청소년에 준하는 권리를 인정한다. 이런 이야기는 가망이 없더라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인간종의 외로움을 보듬고 오만함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다른 종을 비인간 사람(non-human persons)으로 보고 말 걸기를 연습하기. 돌고래 기사단이 남긴 의의다.

심완선 SF평론가

심완선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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