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은 국민 화합의 장이 되어야

원익선 교무 원광대 평화연구소

22대 총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집으로 배달된 국회의원 후보들의 선거 홍보물을 보면 일자리 조성, 교통 여건 개선, 공무원 처우 개선, 예방접종 추진, 심지어는 스포츠단 창단, 박물관이나 전문학교 설립 등도 있다. 이들은 만능박사인가? 그럼 행정부 공무원, 선출직 시장이나 군수, 지자체 의원들은 무슨 역할을 하는 건가. 헌법에서 국회의원은 법률안 제출, 국가 예산 심의·확정, 국내외 조약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 국정 감사나 조사 등이 핵심 역할이다. 예산을 마음대로 주무르니까 그런 것 같지만, 후보들의 공약들을 다 이루려면 이웃 나라 예산을 끌어와도 불가능하다.

위세와 함께 수억원의 혈세를 쓰는 국회의원에겐 합당한 역할이 있다. 그들의 정치 수준은 한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좌지우지한다. 서민생활을 파탄 낸 행정부와 집권여당에 대한 비판, 검사들의 권력 독점으로 합리적인 국가운영을 무너뜨리는 현재의 통치 행위를 타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는 한국 정치가 여전히 후진적 차원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지구상에는 200여 국가가 서로 부대끼며 때로는 협조, 때로는 경쟁하면서 살아간다. 하여 주권자의 대표자들은 공동체의 운명에 대한 국정철학이 있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실종된 것은 시대정신과 국정비전이다. 80년 가까운 남북 분단 속에서 갈가리 찢긴 이 나라를 어떻게 봉합하고 새 길을 열어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없다. 민주정치의 시끄러움에 대응해 고도의 덕성과 전문성을 결합시킨 플라톤의 철인정치, 공자의 인(仁) 사상을 계승해 재산·상벌·인재 등용은 물론 국가 간 힘의 균형을 주장한 정약용의 균민(均民)정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나라를 국민의 가정으로 삼아 스웨덴을 최고의 복지국가로 올려놓은 페르 알빈 한손의 시민정치, 동서독 통일을 향해 물소처럼 뚜벅뚜벅 걸어갔던 빌리 브란트의 신동방정책이나 유럽연합의 출발점이 된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성사시킨 헬무트 콜의 유럽통합의 철학 등은 자신의 조국과 세계를 변화시킨 위대한 정신이다.

비전의 정치가들은 아래로부터 성장하면서 국민 생명을 우선하며 국론 통합의 방법을 몸으로 터득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를 설계한 한손은 자신과 이념이 다른 정치가들을 포용하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중립국가를 관철시켰다. 전후 독일 정치가들은 파시즘으로 세계를 파괴시킨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통렬히 반성하는 동시에 도구적 이성이 아닌 성찰하는 이성을 통한 합의제 민주주의를 고수하며 폐허의 조국을 유럽 최고의 모범국으로 재생시켰다. 김대중 또한 한반도에 필수불가결한 평화의 정치철학을 구축했다. 따라서 이번 총선이 끝나면 사회적 대화와 타협, 정치적 대연정을 이뤄야 한다. 이 사회의 문제의 뿌리는 해방 직후 뜬금없는 분단에 원인이 있다. 소위 분단체제론이 그것이다. 이는 외부의 힘의 논리가 작동한 것이다. 이제 한국은 그 힘을 능가하고, 역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전쟁과 독재정치, 쿠데타, 민주화와 노동운동, 무혈혁명에 이르기까지 수백년에 걸친 서구의 역사를 단기간에 경험했다. 검사들이 주축이 된 법가의 통치는 굴절된 한국 정치사의 끝물이다. 위민(爲民)의 지분이 없는 정치권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나는 이번 총선에서 다양한 정치적 신념을 가진 주체들이 광장으로 뛰쳐나왔다는 것에 희망이 있다고 본다. 여성운동가, 교육 및 복지설계자, 외교 및 군사 전문가, 운동선수, NGO 전문가, 생태 및 환경운동가 등이 자발적으로 이 나라와 세계의 미래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물론 이들은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말하듯 신념윤리와 책임윤리가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민의를 배반한 정권 심판은 불의의 역사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들 민중이 국회에 섰을 때, 대한민국 국시인 ‘홍익인간’ 정신에 기반, 해원(解寃)과 상생의 장을 마련함과 동시에 해묵은 정치를 날려버릴 새판을 짜야 한다. 어떤 가치도 국민의 행복과 평화를 넘어설 순 없다.

원익선 교무 원광대 평화연구소

원익선 교무 원광대 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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