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OTT는 방송인가?

임종수 세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세기 초 라디오가 처음 등장했을 때, 당시 사람들은 라디오를 ‘무선전화’라고 했다. 초기 라디오에 열심이었던 조선일보는 ‘관부(關釜)간 무선전화’(1920년 6월28일), ‘편리한 무선전화’(1924년 10월6일)와 같이 라디오를 무선전화로 칭했다. 이 같은 인식 지체는 텔레비전에서도 반복되는데, 1956년 5월13일 한반도 최초의 방송 서비스 HLKZ-TV 개국 실험방송을 본 현장의 사람들은 “와~ 활동사진이 붙은 라디오다”라고 외쳤다(동아일보, 1956년 5월14일).

임종수 세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임종수 세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올드 미디어가 뉴미디어였을 당시 그 쓰임새가 사회적 통념을 따랐던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디어는 19세기 원천기술인 전화, 축음, 전등, 무선, 영상의 다양한 조합으로 통신, 음악, 방송, 영화 등으로 천천히 제도화해 왔다.

지금의 OTT는 어떤 산업일까? OTT는 방송인가? 통신, 그것도 아니면 영화인가? 이 또한 미래의 언어로 정의되는 올드 미디어가 되겠지만, 뉴미디어인 지금은 그저 통신이나 방송, 영화라는 통념으로 가늠해 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DMB의 실패가 증명하듯 섣부른 제도화는 문화적 상상력은 물론 <오징어게임>으로 불붙은 신한류의 기회마저 날려버릴지도 모른다.

전통적인 텔레비전이 채널이라면 OTT는 플랫폼이다. 전자에는 전송과 채널, 후자에는 스트리밍과 소프트웨어의 문화기술이 흐른다. 채널은 시공간적으로 동기화되어 여러 가지 현실적인 규제를 받지만, 동기화되어 있지 않은 플랫폼은 영화와 같은 수준의 규제틀 속에 있다. 전자가 거실, 터미널, 기차역 등 공개적인 보편적 접근성을 띤다면, 후자는 이용자의 선택적인 접근을 따른다.

하지만 OTT는 무척 방송스럽다. 다만 채널이 국경으로 테두리지어진 민족문화의 성격을 띤다면, OTT는 개인적이면서 글로벌적이다. 매체미학적으로 전자가 드라마·광고·뉴스 등 계획된 흐름의 미디어라면, 후자는 개개인의 취향을 토대로 맞춤화되어 있다. OTT는 방송이 집착하는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는다. 대신 얼마나 많은 시청자가 봤는지, 가입자 수가 어떻게 변동하는지가 중요하다.

OTT는 방송사, 통신사, 영화제작사, 제3의 사업자의 출신 성분으로 분류된다. 앞의 세 경우는 이미 자신의 수용자가 있기 때문에, 그런 OTT는 기존 고객 유지가 중요하다. 그에 반해 제3의 사업자의 OTT는 시장 개척이 목표이다. 후자의 넷플릭스를 제외하면 다른 대부분의 OTT, 특히 한국의 OTT는 기성 미디어의 파생물이다. 한국에서 유난히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이 강조되는 이유이다.

하지만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는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원칙이 아니라 특별한 미디어 진화가 만들어낸 조어일 뿐이다. KBS와 웨이브, 넷플릭스를 부분집합으로 묶는다면 KBS-웨이브, 넷플릭스가 정답인가? KBS, 웨이브-넷플릭스가 정답인가? 나는 차라리 ‘다른 서비스, 다른 규제’가 옳다고 본다. 그랬을 때 ‘다른 서비스’인 토종 OTT의 성장과 ‘다른 서비스’인 레거시 미디어의 보호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OTT는 인터넷이 등장하고 미디어에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 이후 나타난 디지털 전환(DT)의 결과물이다. 누군가는 이를 ‘뉴 뉴미디어’(new new media)라고 부른다. 말장난처럼 들리는 뉴 뉴미디어는 전통적인 뉴미디어(new media), 그러니까 저 멀리 케이블TV에서 시작해 초기 인터넷의 e메일, 웹사이트와 같이 인간을 수동적 시청자 또는 수동적 참여자로 삼는 미디어가 아니라 모든 소비자를 생산자로, 독자를 작가와 발행자로, 시청자를 수행자로 바꿔내는 미디어이다.

넷플릭스가 ‘창작’을 핵심 가치로 하는 뉴 뉴미디어라면, 페이스북은 ‘표현’을 중심 가치로 하는 뉴 뉴미디어이다. 이를 묶어 한꺼번에 OTT라고 부르지만, 그 결은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방송 모델도 통신 모델도 아닌 인터넷 모델 위에 세워진 완전히 새로운 미디어 형식이다. 제도화의 칼을 들이댄다면 그 차이 정도는 이해하고 시작해야 한다.

정치적 변동과 함께 미디어 규제체계도 너울을 타고 있다. 그 논의에서 적어도 신생 미디어를 기존의 통념으로 가두는 것은 피했으면 한다. 섣부른 범주 설정이 급한 것이 아니다. 미디어 산업을 합법칙적 진화의 방향에 맞게 위치 지으면 정책적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라디오가 전화라고 불렸지만 통신이 아니었던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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