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성소수자’와 ‘재생산권’은 교육과정에 포함돼야 한다

류영재 대구지방법원 판사

교육부가 지난 9일 ‘초·중등학교 교육과정’과 ‘특수교육 교육과정’에 대하여 ‘성소수자’ 표현을 삭제하고,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차별 사유에서 제외하며, ‘재생산’이란 표현을 ‘생식’으로 대체한 후 이를 임신 및 출산, 육아에 관한 내용임을 명확히 하겠다는 행정예고를 했다. 이러한 ‘성소수자’ 및 ‘재생산권’ 개념은 그동안 법적으로도 다뤄졌으므로 살펴본다.

대법원은 다양한 성적 지향 및 성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인식을 꾸준히 바꿔왔다. 2007년 대법원은 동성애에 관하여 ‘이성애와 같은 정상적인 성적 지향의 하나로 보아야 하는 시각’과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는 시각’을 대등하게 나열하고, ‘동성애에 관한 정보를 이성애자 청소년에 대한 유해 정보로 판단하여 그 정보 제공을 금지하는 처분’을 위법하지 않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04두619 판결).

그러나 2013년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이유로 위 판단을 바꾸어 동성애 성행위 장면이 나오는 영화에 대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판정을 취소하였다. 2014년에는 동성애자가 자녀를 입양한 후 동성과 동거하면서 생물학적 성과 다른 성역할을 수행한다고 하여 그 입양을 선량한 풍속에 반하는 입양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고(대법원 2012므806 판결), 2017년에는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 내지 성정체성이 외부로 공개되었을 때 그것이 사회의 도덕관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가족, 이웃과 대중으로부터 반감과 비난에 직면하게 되고 그러한 사회적 비난, 불명예, 수치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기기로 결심해야 하는 데 이른다면 이는 부당한 사회적 제약이라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6두56080 판결).

2022년에 이르러서는 ①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성적 지향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② 동성애는 선천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형성되는 것이며 사람의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며 ③ 특정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하거나 처벌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에 반하고 ④ 동성간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부르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동성 군인들 사이의 사적이고 자유로운 성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 위반의 소지가 크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9도3047 판결).

재생산권은 여성이 국가나 사회의 제도와 통념에 의하여 성관계·임신·출산 등을 관리·강요·강제받는 수단으로 취급받는 것에서 탈피하여 온전한 권리의 주체로서 존중받으며 성관계·임신·출산 등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를 자유롭고 안전하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권리로서 국제인권규범의 한 내용이다. 재생산권은 여성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임신중지를 선택할 권리도 포함한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형법상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재생산권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헌법재판소 2017헌바127 결정). ① 임신·출산·육아는 여성의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이므로 임신을 유지할 것인지 또는 중지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여성의 전인격적 결단에 해당한다. ② 인간은 궁극적 목적이자 최고의 가치로서 대우받아야 하므로 여성은 임신의 유지 또는 중단에 관한 결정을 하는 데 있어 국가로부터 다른 목적·가치·법익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 ③ 임신한 여성과 태아는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여성의 임신중지 결정은 태아의 생명을 버리는 결정이 아니라 태아에 대한 양육 및 책임 가부를 절실히 고민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태아의 실질적 생명 보호를 위해서는 임신중지의 전면 금지가 아니라 원하지 않는 임신의 방지, 출산 및 육아가 가능한 사회적 인식 및 환경의 조성 등이 필요하다. ④ 임신한 여성에게는 임신 유지 또는 중지를 결정하기 위한 충분한 정보의 제공,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 제고가 필요하고, 임신중지를 결정한 여성에게는 안전하고 신속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정보와 의료적 조치의 제공이 필요하다.

헌법재판소 결정 내용을 살펴보면, 여성은 임신·출산·육아의 전과정에 있어 존엄한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재생산의 권리는 임신 및 출산을 전제로 한 권리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임신중지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가하는 것과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 등은 재생산권의 미보장으로 평가할 수 있다.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의 존재를 인지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부당함과 심각성을 배우는 교육과정을 통해 자신의 성적 지향 또는 성정체성을 긍정하고 사회적 시민으로서 승인받는 과정을 거쳐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지 않아야 한다. 여성 청소년들은 재생산권의 권리 주체로서 임신을 유지하거나 중단하는 전 과정에 관한 권리 내용을 배우고 적절한 정보와 조치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성소수자’와 ‘재생산권’은 특히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내용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법과 제도를 만드는 입법부 및 행정부와 달리 기존 법을 헌법에 따라 해석하는 사법부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데, 성소수자의 권리 및 차별 금지, 여성의 재생산권은 그러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의해 인정된 권리들이다. 한 명의 법조인으로서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이 성소수자와 재생산권에 관한 법규범적 내용을 충실히 교육받을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류영재 대구지방법원 판사

류영재 대구지방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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