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모적인 과거사·색깔론 뒤덮인 대선판, 미래 논의하겠나

대통령선거전이 초장부터 소모적인 과거사 논쟁과 색깔론으로 뒤덮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1일 안동을 방문해 “대한민국이 정부 수립단계에서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 체제를 유지했다”고 한 것을 두고 보수 쪽에서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의힘은 물론 윤석열 전 검찰총장까지 나서 “충격적 역사관” “대한민국의 정통성 부정”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허다한 국가 현안 속에 국가의 미래상을 놓고 치열하게 논의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철지난 일로 시비를 벌이는 모습이 개탄스럽다.

가장 한심한 것은 보수야당의 철지난 색깔 공세다.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5일 이 지사를 향해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을 하든지 북한으로 망명하든지”라고 했다. 정진석 의원은 전날 “‘빨갱이’라고 핍박받던 주사파적 흐름이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됐다”고 말했다.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러운 시대착오적 발언에 할 말이 없다. 36세의 당대표를 뽑으며 변화를 모색하는 당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발언이다. 정치에 갓 입문한 윤 전 총장의 행태는 더욱 실망스럽다. 윤 전 총장은 이 지사를 두고 “대한민국을 잘못된 이념을 추종하는 나라로 만들려 한다”고 했는데, 참신한 정치와 너무나 거리가 멀다. 장모가 3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 등 악재를 덮기 위한 정치적 술수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대선 후보의 사상을 검증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바람직한 검증이 되려면 색깔론을 뛰어넘어야 한다. 당시 한반도로 진주한 맥아더 사령부가 스스로 ‘점령군’으로 규정한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 이 지사는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푸대접 받고 있으니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발언의 취지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과연 지금이 친일 청산 주장을 할 때인지 고민했어야 했다. 반일이냐 친일이냐 논쟁을 일으켜 표를 얻으려는 시도는 지양돼야 한다.

대선은 우리 사회의 미래 방향 등 모든 의제를 올려놓고 시민들의 의지를 묻는 장이다. 대선전이 시작되자마자 정치권이 과거사 논쟁과 사상 검증에 휩싸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 너무나 엄중하다. 코로나19 대처, 양극화, 부동산 문제 등 난제가 산적하고 미·중 갈등으로 국가의 운명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가를 이끌어나갈 리더십과 식견, 도덕성을 갖췄는지 검증하는 것이다. 시민은 누가 시대정신을 말하고 그에 부합하는 공약을 내놓는지 지켜보고 있음을 후보들은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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