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이 지난 9일 발표되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뇌심혈관계 및 근골격계 질환 등이 직업성 질병에서 제외되는 등 법 적용 대상이 크게 축소되고, 사업주에 부과된 의무는 모호하게 규정돼 노동계 반발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간다면 중대재해법이 제구실을 하지 못할 것이 뻔하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자 사망 산재 발생 시 안전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처벌이 핵심이다. 그런데 시행령은 안전보건 관리 구축 의무가 있는 사업주에게 인력·시설·장비 등을 갖추는 데 적정 예산을 편성하도록 했을 뿐 구체적 기준을 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위험 작업 시 2인1조 원칙 및 신호수 배치 같은 노동계의 요구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기준이 모호하면 사고가 났을 때 인과 관계나 책임 소재를 두고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시행령으로는 홀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나 이선호씨와 같은 불행한 사례를 막을 수 없다. 반면 사업주에겐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자 안전보다 기업에 책임 회피 명분을 준 정부로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중대재해의 대상이 되는 직업성 질병에 과로사 원인으로 지목되는 뇌심혈관계 및 근골격계 질환과 직업성 암이 제외된 것도 문제다.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나, 학교 급식실 비정규 노동자의 폐암 등이 빠지는 문제가 생긴다. 노동자와 시민을 중대재해로부터 보호한다는 입법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논란이 된 사안들은 시행령 제정 전부터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강조해온 것들이다. 그럼에도 결과물을 보면 과연 정부가 의견 수렴에 최선을 다했는지 의문이 든다. 지난 1월 누더기가 된 중대재해법을 통과시킨 국회는 ‘경영계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모법에 이어 시행령마저 졸속이라는 비판을 받는다면 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정부는 40일간의 입법예고 기간 동안 노사 등 각계 의견을 반영해 제기된 문제점을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