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견 불용·점령군 행태 인수위, 국민통합 약속 팽개치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2차 간사단 회의에 참석해 위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2차 간사단 회의에 참석해 위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통합위원회 정치분과위원장으로 30일 임명된 김태일 장안대 총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은 국민의힘에서 빗발치듯 김 총장을 비토하고 있다고 전했고, 김 총장은 대선 때 윤석열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비판한 칼럼을 문제삼은 것 같다고 했다. “보수진영에 따끔한 소리를 해달라”는 김 위원장 권유에 응했다가 임명 당일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국민통합’이란 위원회 명칭을 무색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김 총장은 중도개혁 성향의 정치학자이다. 칼럼이나 TV토론에서 정치개혁과 지방자치에 힘을 싣고, 2017년 대선 후엔 국민의당 혁신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김 총장은 지난 1월 “페미니즘이란 궁극적으로 모두를 위한 진보”라며 윤 당선인의 젠더 갈라치기가 이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걱정하는 칼럼을 썼다. 인수위가 여성정책 강화를 요구하는 여성단체와 간담회를 자청한 마당에 그런 가치를 환기시킨 칼럼니스트를 찍어낸 것은 이율배반이다. “오또케”라는 여성혐오 발언으로 윤석열 선대위를 떠난 대학교수를 다시 인수위 전문위원으로 합류시킨 것과도 비교된다. “저 같은 사람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면 국민통합을 어떻게…”라는 김 총장의 말이 결코 가벼이 들리지 않는다.

인수위가 30일 김진욱 공수처장의 거취 표명을 요구한 것도 부적절하다. 독립 수사기관이라 업무보고가 아닌 간담회를 한 자리에서 사실상 사퇴를 압박한 것이다. 공수처의 수사력 부족이나 문제가 된 처신은 백번 고치고 경각심을 높이는 게 맞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법으로 정한 공수처장의 사퇴를 종용한 것은 선을 넘었다. 가뜩이나 윤 당선인의 고발사주 의혹을 수사 중인 곳 아닌가. 이런 외압이 재발되어선 안 된다. 인수위가 윤 당선인 측에 비판적 보도를 한 인터넷 매체의 기자실 출입 신청을 거절하고, 여가부 인력 파견을 거부했다가 뒤늦게 과장급 공무원을 출장 근무시키고 있다고 한다. 위압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첫 약속이 “인수위는 점령군이 아니다”였다. 윤 당선인도 현 정부에서 계승할 것과 미진한 것을 잘 가르라고 했다. 말로는 겸손과 소통을 강조해놓고 행동은 따로 가고 있다. 새 정부는 0.73% 차로 신승한 대선의 의미와 국정을 잘할 거라는 기대가 50%를 밑도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민통합은 승자가 독식하지 않고, 다양성이 공존하며, 민주적으로 소통하는 세상에서 싹틀 수 있다. 인수위는 점령군 행태를 각성하고 낮고 열린 자세로 국정 밑그림을 그려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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