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탄핵 수사 다해놓고 박근혜에 “면목 없다” 한 윤석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대구에 있는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자택을 방문해 약 50분간 만났다. 윤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굉장히 죄송하다. 면목이 없다. 늘 죄송했다”고 했다고 배석자들이 전했다. 2017년 박씨의 국정농단 조사를 위한 특검의 수사팀장과 피의자로 만났던 악연을 풀자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또 “박 전 대통령이 했던 일들, 정책에 대해 계승도 하고 널리 홍보도 해서 박 전 대통령께서 제대로 알려지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인간적인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표시했다”고 했지만, 그런 수준을 넘어섰다. 탄핵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말로 들린다. 촛불시민의 이름으로 분노와 함께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박씨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것 이외에도 윤 당선인의 이날 발언은 충격적이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께서 당시 내각과 청와대를 어떻게 운영했는지 자료를 봤고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고 근무한 분들을 찾아뵙고 국정을 어떻게 이끌었는지 배우고 있다”고 했다. 경제발전 등 공로도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쿠데타로 집권한 헌정 파괴자이자 독재자였다. 모든 정책을 민주적 절차를 통해 추진하는 시대이다. 윤 당선인 본인도 민간이 이끌고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가 주도하는 박정희식 국정운영을 배우고 있다니 황당하다. 윤 당선인은 박씨에게 취임식 참석을 요청했고, 박씨는 “건강이 여의치 않지만, 가능하면 참석하겠다”고 했다. 헌정사를 얼룩지게 해놓고 반성을 하지 않는 박씨를 초청한 것은 옳지 않다. 박씨는 금고 이상 형을 받은 터라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지 못한다. 그런데 당선인은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선인이 앞장서 법 규정과 원칙을 무시하겠단다. 도대체 법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윤 당선인은 어느 한 정당의 대선 후보가 아니라 국가 구성원 전체를 대표하는 제1시민이다. 윤 당선인의 박씨 자택 방문과 입장 표명은 자신이 과거 활동에 대한 부정에 그치지 않는다. 박씨의 무능과 국정농단에 분노해 한겨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윤 당선인의 행보에는 보수층을 결집하겠다는 뜻이 투영돼 있다.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행보라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다. 이제는 국민통합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후과는 윤 당선인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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