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문투성이 국정원 기조실장 사임, 진상 밝혀야

국가정보원 간부들이 26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 출석해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맨 왼쪽의 조상준 기획조정실장 자리는 비어 있다. 왼쪽부터 권춘택 1차장, 김규현 원장, 김수연 2차장, 백종욱 3차장. 국회사진기자단

국가정보원 간부들이 26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 출석해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맨 왼쪽의 조상준 기획조정실장 자리는 비어 있다. 왼쪽부터 권춘택 1차장, 김규현 원장, 김수연 2차장, 백종욱 3차장. 국회사진기자단

검사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인 조상준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52)이 돌연 사임했다. 조 실장은 26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 참석을 하루 앞두고 대통령실에 사의 표명을 했고 사표가 즉시 수리됐다. 안보 환경이 엄중한 상황에서 정보기관의 핵심 당국자가 갑자기 물러났는데, 대통령실과 국정원 모두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실과 국정원은 조 전 실장이 “일신상의 개인적 이유”로 사임했다는 설명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무엇보다 조 전 실장의 사표 처리 과정이 매우 이례적이다. 국정원에 따르면 조 전 실장은 지난 25일 일과시간 중 대통령실에 사표를 제출했다. 윤 대통령은 사표를 즉시 수리했고, 이 사실을 담당 비서관을 통해 김규현 국정원장에게 알렸다. 김 원장은 그때까지 자기 기관의 핵심 고위 관계자의 사표 제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공무원이 직속 상급자를 건너뛰고 대통령에게 직접 거취를 표명한 것도 이상하려니와 대통령실이 해당 기관장의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고 바로 사표를 수리한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정보기관에서 고위직이 지휘 계통을 무시하고 사직했다니 국정원장은 허수아비인가.

조 전 실장과 김 원장이 인사 문제 등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는 말이 나온다. 기조실장은 국정원 인사와 예산, 조직을 다루는 원장을 보좌하는 요직이다. 조 전 실장의 경우 윤 대통령과의 친분 때문에 사실상 국정원 1인자로 통했다. 서울고검 차장 출신인 조 전 실장은 윤 대통령의 검찰 인맥으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윤석열의 오른팔·왼팔’로 일컬어졌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복심 참모가 허수아비 국정원장과 다투다 스스로 그만두었다는 말인가. 이것 또한 쉬 납득이 안 간다. 사표가 즉시 수리된 점도 석연치 않다. 국가기밀을 다루는 고위 공무원이 퇴임하려면 그 사람이 재임 시 비위를 저지르지 않았는지 등을 꼼꼼히 검증하게 돼 있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조 전 실장의 사의는 대통령에 의해 바로 수리됐다. 때마침 다음날은 조 전 실장이 국감에 출석해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등으로 전 정부 국정원장 2명이 검찰 수사를 받는 데 대해 답변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대통령실, 총리실, 국정원은 조 전 실장의 사표 수리 시점과 한덕수 국무총리의 결재 여부 등을 놓고 답변이 엇갈리기도 했다. 너무나 이상하고 비상식적 사직이다.

국정원은 전 정부 때 국내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윤 대통령 취임 후 국정원은 전임 원장 2명을 고발하면서 국내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조 전 실장이 돌연 사퇴한 것은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의혹투성이인 이번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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