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 52시간’ 허물겠다는 정부, 노동자 건강권 안중에 없나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자문기구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주 52시간제’ 해체를 사실상 권고했다. 기본 40시간 외에 최대 12시간까지 허용되는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개편하라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르면 산술적으로 주당 69시간까지 장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 ‘자유롭고 건강한 노동’을 내건 개편안은 노동자 건강권을 악화시킬 게 분명하다. 그야말로 양두구육(羊頭狗肉)이다.

연구회는 권고문에서 관리단위에 따라 월 52시간, 연간 440시간까지 연장근로가 가능케 하는 안을 제시했다. “노사가 자유롭게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근로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원할 경우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에 대한 보상을 시간으로 저축해 휴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 제안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6월 경제정책방향에서 발표한 내용과 판박이다. 연구회가 노동계는 쏙 빼고 전원 학계 인사로 꾸려졌을 때 예견된 결과다.

정부는 노동시간을 노사 합의로 정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지 5년째임에도, 노조 있는 사업장에서조차 10곳 중 4곳꼴로 장시간 노동이 계속되는 실정이다. 노조 조직률이 14%에 불과한 데다, 30인 이상 사업체에서 사측과 교섭할 ‘근로자 대표’ 제도도 미비하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사측에서 ‘저축’을 명목으로 초과근로에 따른 가산임금을 주지 않을 경우 무임금 노동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11시간 연속휴식권’을 강제화하는 등의 안전 규정을 뒀다지만, 연차휴가도 소진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정부는 프랑스·독일도 연장근로제도를 두고 있다고 하나, 비교 대상이 아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장 수준의 연간 노동시간(1928시간)으로 악명이 높은 반면, 이들 국가는 한국보다 연간 500~600시간 덜 일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주 48시간 이상이면 장시간 노동으로 본다. 이는 시민의 건강을 해치고, 출생률을 떨어뜨려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약화시킨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저출생·고령화로 2050년 한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15위권 밖으로 밀려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화물연대 파업을 탄압으로 종결시킨 정부는 내년 근로기준법 개악을 벼르고 있다. ‘일 시키기 좋은 나라’ 만들려다 ‘미래 없는 나라’ 만들 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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