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태원 참사 10대 생존자의 죽음, ‘애도 없는 정치’의 책임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생존한 고등학생 A군이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한 숙박업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경찰은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하고 있다. A군은 참사 당일 중상을 입고 회복됐지만 함께 있던 친구 두 명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밝고 친절한 성품이었다는 청년이 그간 겪었을 고통과 상실감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얼마 전에는 “아이가 보고 싶어 살 수 없다”며 극단적 선택을 암시한 유족이 경찰에 발견된 사례도 있었다.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의 여진이 생존자와 유가족, 목격자는 물론 그들과 연결된 공동체를 흔들고 있다.

정부는 참사 이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 이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상담 및 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A군도 교내 심리상담 등을 받아왔다고 한다. 상처로 치면 소독하고 붕대 감는 응급조치다. 온전한 회복에는 사회의 지지가 필요하고, 진정한 애도는 직무유기에 대한 책임 규명과 사과에서 출발했어야 한다. 그러나 서울 시내 중심가에서 158명이 숨진 참사가 박근혜 정권의 세월호 참사처럼 정치적 후폭풍을 낳을 것을 우려한 정부·여당은 파장 축소에만 급급했다. 유족들이 모이는 것을 극구 꺼리던 정부는 참사 발생 한 달 만에 일방적으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해체했다. 유족들이 협의회를 꾸리자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막말을 했다. 같은 당의 창원시의원은 옮기기조차 끔찍한 망언들을 쏟아냈다.

이러한 2차 가해가 노리는 것은 피해자를 침묵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다. 살아남은 이들의 심리적 외상이 깊어지고, 분노가 스스로를 향할 경우 극단적 선택 우려가 커진다. 유족들은 지난 13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을 향해 “피지도 못하고 꺾인 우리 아이들과 유족들에게 ‘지켜주지 못해서 잘못했다. 용서해달라’고 진심으로 사과하라”며 절규했다. 이들의 절박함을 헤아리지 못하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14일 서울지하철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에는 유족이 동의 뜻을 밝힌 희생자 70여명의 영정과 위패가 안치됐다.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치가 답할 차례다.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고, 책임자를 경질하고, 생존자와 유가족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더 큰 불행을 막아야 한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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