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대재해법 1년, 256명 사망했는데 기소는 고작 11건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가 2021년보다 3.2% 늘어난 256명으로 집계됐다. 이를 두고 보수언론들은 재해를 줄이기 위해 기업의 경영책임자를 엄벌하는 법이 도입됐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고용노동부도 기업 경영책임자들이 처벌을 면하기 위해 안전보건체계 입증을 위한 서류작업 등에 치중하면서 현장 예방에 소홀했다고 분석했다. 시행 1년 만에 재계, 보수언론과 정부까지 ‘법 흔들기’ 에 나선 양상이다. 하지만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는 진단이다.

경향신문이 중대재해법 시행 후 검찰이 기소한 사건 공소장 11건 전체를 분석한 결과, 법 적용대상 229건 중 노동부가 검찰에 송치한 것은 30여건에 그쳤다. 그나마 검찰은 이 중 3분의 1인 11건만 재판에 넘겼다. 판결이 나온 사건도 없다. 기소 대상은 중소기업에 집중됐고, 대기업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아직 처분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1월 토사 붕괴·매몰 사고로 노동자 3명이 사망해 중대재해법 적용 1호가 된 삼표산업 사건을 비롯해 현대건설,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사건이다. 시행 초기부터 신속·엄정하게 법 집행이 이뤄지지 않으니 기업들의 긴장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재해사망 노동자가 늘어난 것은 법 집행에 소극적인 당국의 태도와 무관치 않다.

이런 가운데 노동부가 지난 11일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TF’를 발족시켰다. 노사 당사자 없이 학계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TF는 재해사고 제재방식을 개선하고 처벌요건을 명확하게 하는 방안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한다. 말이 개선이지 법 취지를 후퇴시키는 방향으로 ‘개악’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경제단체장들과의 만찬에서 중대재해법이 결함이 많다며 “기업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 걸 보면 방향은 사실상 예고된 셈이다.

한국의 중대재해율(1만명당 사망노동자 수)은 경제협력개발기구 최하위권(2021년 34위)이다. 경제규모는 선진국이나 ‘일터의 안전’은 개도국 수준을 면치 못했다. 중대재해법은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는 사회적 염원이 모아진 법이다. 정부는 법을 뜯어고칠 게 아니라, 엄정한 법 집행으로 일터 안전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제대로 시행해보지도 않고, 법 자체를 형해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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