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의 판결문에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실명이 수차례 적시된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은 특히 공소시효가 남은 2차 주가조작 시기에도 김 여사와 어머니 최은순씨 증권 계좌가 시세조종에 이용된 것으로 판단했다.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김 여사 관련 의혹을 규명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
13일 공개된 권 전 회장 1심 판결문을 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주가조작) 1단계에 이어 2단계에서도 연속적으로 위탁된 계좌는 최은순, 김건희 명의 계좌”라고 밝혔다. 2009년 12월부터 시작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은 2010년 10월을 고비로 작전세력을 주도한 ‘선수’가 바뀐다. 이에 따라 2010년 10월20일 이전은 1차 작전, 2010년 10월21일 이후는 2차 작전으로 구분되는데, 김 여사와 최씨 계좌만 두 기간 모두 시세조종에 쓰였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김 여사가 모두 6개 계좌로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보유했고, 이들 계좌에서 2012년쯤까지 주식 매매가 이뤄졌다고 봤다. 시세조종에 쓰인 계좌는 최소 3개라고 판단했다. 이는 ‘김 여사가 1차 작전세력인 선수 이씨에게 계좌를 맡겼으나 2010년 5월 이후 관계를 끊었다’는 윤 대통령의 대선 당시 해명과 배치된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실패한 주가조작”으로 규정하고, 권 전 회장 등이 107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실패한 주가조작도 위법”이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상장회사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인 권 전 회장이 2년 넘는 기간에 걸쳐 시세조종을 실행했다”면서 “전체 범행 기간 통정·가장매매가 101건, 현실거래에 의한 시세조종 주문이 3083건에 이르는 등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지난 10일 1심 선고 직후 재판부의 “실패한 주가조작” 판단을 이유로 ‘대통령 배우자가 전주로서 주가조작에 관여했다는 더불어민주당 주장은 깨졌다’고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성공했든 실패했든 주가조작 시도 자체가 위법행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김 여사는 20대 대선 과정에서 도이치모터스 ‘이사’로 재직한 정황이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 여사가 수강한 2011년 서울대 인문대학 최고지도자 인문학과정(AFP) 원우수첩에, 김 여사 경력이 ‘도이치모터스 제품 및 디자인 전략팀 이사’로 기재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검찰은 2021년 12월 권 전 회장 등을 재판에 넘겼지만, 김 여사에 대해서는 어떤 결론도 내지 않고 있다. 단순한 전주(錢主)인지, 불법행위의 공범인지 신속히 조사해서 그 결과를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제1야당 대표는 몇번씩 검찰로 부르면서 대통령 부인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할 텐가. 검찰이 수사를 회피하면 할수록 더불어민주당의 ‘김건희 특검’ 주장이 힘을 받게 될 것임을 새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