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구지하철 참사 20주기, 우리는 얼마나 안전해졌나

2003년 2월18일 오전 9시53분, 처지를 비관한 50대 남성이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1079호 차량에 탑승해 인화물질을 뿌린 뒤 불을 붙였다. 삽시간에 화염이 차량으로 번졌지만 초기 진화용 스프링클러는 없었다. 3분 뒤 맞은편 선로에 “화재가 났으니 조심히 들어오라”는 종합사령실 지시를 받은 1080호 차량이 진입했다가 정전으로 멈춰서면서 불길이 옮겨붙었다. 그렇게 시민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친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지 오늘로 20년이 됐다. 우리 사회는 무엇을 배웠고 얼마나 안전해졌나.

일부 진전은 있었다. 지하철 내장재가 방염처리됐고, 안전관리기본법도 도입됐다. 하지만 동일한 패턴의 대형 참사와 대응이 줄곧 반복돼온 점은 우리 사회가 근본적 문제를 놓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구지하철 사고는 사령실 오판으로 차량이 진입하며 발생한 추가 희생자 규모가 100명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찬가지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때엔 당국이 구조에 실패해 304명이 희생됐고, 2022년 이태원 참사에선 경찰이 인파 위험 신고를 무시해 159명이 숨졌다. 안전 관련 시스템이 있음에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구지하철 참사 직후 여론의 분노는 정신질환자 범인과 기관사를 욕받이 삼아 쏟아졌을 뿐 진상규명은 흐릿한 상황에서 백서 한 권 펴내지 못했다. 이후 모든 참사들이 마찬가지였다.

이는 국민안전을 책임지는 정부가 제대로 추모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구지하철 참사 발생 6년 만에 조성된 추모공원은 묘역에 안내판도 없고 희생자 위령탑은 ‘안전상징 조형물’로 불리는 반쪽짜리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참사 20주기 추모식이 “정치투쟁화되고 있어” 불참하겠다며 “유가족위원회에 유가족 자격이 안 되는 분이 있다면 배제 절차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의 서울시청 앞 분향소를 철거하겠다는 서울시 태도와 판박이다.

사회가 그렇게 잊을 때, 참사는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된다. 대구지하철 참사 유족들은 “우리가 제대로 했더라면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미안해한다. 고통받은 이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죄책감까지 느끼게 하는 사회라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따지고 보면 지난해 12월 방음터널의 가연성 자재 발화로 49명이 사상한 경기 과천 화재도, 결국 우리 사회가 대구지하철 참사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에 치른 희생이다. 지금 할 일은 참사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하는 백서를 만들고, 이를 거울삼아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첫걸음은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2·18추모공원’ 명칭을 병기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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