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본에 반성·사과 요구 없는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정동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정동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3·1절 연설을 했다. 읽는 데 5분 남짓 걸린 짧은 기념사에서 윤 대통령은 “엄혹한 안보 상황”을 강조하며 일본과 협력해야 하는 이유를 역설했다. 그러면서 일본을 향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국가지도자로서 헌법 전문에 명시된 3·1운동의 의미를 제대로 새기고 있는지 의심케 하는 연설이었다.

윤 대통령은 1일 서울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104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3·1운동이 “자유로운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이었다며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윤 대통령은 조선의 국권 상실이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데 있었다며 북핵 위협 등 현재의 위기 속에서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에 대응하지 못하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이 일본 지배를 받게 된 데는 조선 사회 내부 요인도 있었지만 일본의 침략 등 외부 요인이 컸다는 점에서 균형감각을 상실한 역사관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전체 연설의 4분의 1 정도를 한·일관계에 할애했다. 그는 일본이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파트너”로 변했다며 지금의 안보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일 협력은 “104년 전,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외친 우리 선열들의 그 정신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안보위기의 존재, 그에 대응하는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까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일본과 협력하는 것이 어째서 104년 전 3·1운동에 참여했던 선열들의 정신과 같은 것인가. 심대한 논리적 비약이다.

이러한 비약은 윤 대통령이 일본을 향해 과거사 관련 언급을 전혀 하지 않은 것과 관계된다. “역사의 진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이명박·89주년),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박근혜·94주년), “일본은 인류 보편의 양심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문재인·99주년) 등 역대 대통령의 첫 3·1절 기념사에는 과거사 관련 언급이 포함됐다. 현재 한·일 정부 간에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해법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외교에선 상대국 못지않게 자국 시민의 자존심도 고려해야 한다. 더욱이 다른 날도 아닌 3·1절이 아닌가. 이밖에도 남북관계 관련 언급이 전혀 없는 등 기념사에 드러난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도자의 연설은 중요하다. 특히 3·1절이나 광복절과 같은 주요 기념일의 연설은 지도자가 자신의 비전을 시민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해 사회통합을 촉진하고 국정운영 동력을 만들어가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다운 비전도, 리더십도 찾아보기 어려운 실망스러운 연설로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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