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형벌’ 무더기 완화, 재벌 봐주기 아닌가

한덕수 국무총리(가운데)가 2일 경기 성남시 판교 메타버스 허브센터에서 열린 ‘제3차 규제혁신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법무부 등은 이날 ‘경제 형벌 규정 2차 개선 과제’를 보고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운데)가 2일 경기 성남시 판교 메타버스 허브센터에서 열린 ‘제3차 규제혁신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법무부 등은 이날 ‘경제 형벌 규정 2차 개선 과제’를 보고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2일 국무총리 주재 제3차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열어 기업인에 대한 형벌 규정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기업투자·민생경제 활력 제고를 위한 규제 혁신’ 방안을 보면, 기업이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 행위(공정거래법 위반)를 한 경우에도 과징금 등 행정제재만 이행하면 처벌받지 않는다. 오염물질을 불법으로 배출하거나 폐기물을 불법처리한 업자에 대한 처벌도 완화하기로 했다. 시대착오적이고 황당한 규제는 당연히 없애야 한다. 기업인들의 사기를 높여 경제 활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폐지 시 부작용이 뻔히 예상되는 내용까지 밀어붙여서는 곤란하다.

정부가 이날 규제 혁신안이라고 밝힌 내용을 보면 재벌·대기업의 민원으로 의심되는 내용이 무더기로 포함됐다. 전지 공장 건설 과정에서 건축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관할 소방서의 의견을 안전성 검증으로 대체한 것이 대표적이다. 전지 공장에 소방 안전 규정이 촘촘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만큼 화재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행정 절차를 줄여준다는 게 이번 조치의 명분이지만, 만에 하나 화재나 폭발 등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산단 내 녹지나 농지에 공장을 지을 수 있게 허가하는 것도 재고해야 한다. 용지 변경은 그 자체로 엄청난 특혜다. 녹지가 사라지면 공단 환경이 그만큼 나빠지고 오염원 누출 시 안전판이 취약해져 대형 사고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부동산 정보를 온라인에 허위로 올린 부동산거래정보망사업자에 대한 처벌을 완화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전세 사기를 막겠다며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발표한 게 엊그제 일이다.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 레저업체와 다단계사업자 및 사행산업 대표의 비위에 징역형을 폐지하면 시민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정부가 이번에 손보겠다는 형벌 규정 등 규제는 108개에 이른다. 윤석열 대통령의 규제 완화 지시 이후 각 부처가 속도전을 벌이는 모양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규제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규제 완화는 투명성과 책임성이 중요하다. 재계나 업자들이 풀어달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정부 혼자 결정해서는 안 된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는 이명박 정부 때 해운업체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선령 제한을 30년까지 완화한 것이 원인이 됐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경제 위기를 이유로 기업인들에게는 당근을 주면서 노동자들에게는 채찍을 드는 것도 형평성에 맞지 않다. 이번 규제 완화는 공정거래법, 방문판매법, 수중레저법, 공인중개사법 등의 개정이 필요하다. 국회는 108개 사안 모두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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