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워싱턴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100년 전 일을 가지고 (일본에) ‘무조건 무릎 꿇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4일자 인터뷰에서 일본과의 협력을 미루기엔 한국 안보상황이 너무 급박하다며 “유럽에선 참혹한 전쟁을 겪고도 미래를 위해 전쟁 당사국이 협력을 한다”고도 했다. 과거사에 눈감고 미래만을 강조하는 윤 대통령의 몰역사적 대일관을 또다시 드러낸 것이다. 반성하지 않는 일본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일본을 용서하지 않는 한국을 탓하는 대통령의 인식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대통령의 발언은 국가 간 화해·협력에 대한 인식도 결여돼 있다. 유럽 국가들이 미래를 위해 협력할 수 있는 이유는 전쟁을 일으킨 독일이 기회 있을 때마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으로 화해·협력의 토대를 굳건히 했기 때문이다. 지난 19일에도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폴란드 바르샤바를 찾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반성하며 독일의 “역사적 책임에는 끝이 없다”고 했다. 유럽 같은 화해·협력 프로세스가 동북아시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책임은 일본에 있다. 왜 그 책임을 자국민에게 묻는가.
윤 대통령이 대외관계에서 정제되지 않고 독단적인 발언을 쏟아낸 건 이번만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고 했다. 한·중 수교의 기본 전제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부정한 것이다. 중국이 반발하며 동원한 “불장난 하면 타 죽을 것” 등의 극언은 선을 넘었지만, 윤 대통령의 ‘거친 입’이 사태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과 일본조차 대만해협을 거론할 때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동의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몰랐단 말인가.
윤 대통령은 이번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무기지원에 대해 “우리나라와 교전국 간의 여러 관계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발언으로 러시아를 자극한 이전 인터뷰보다 신중해진 태도를 보인 것인데, 그렇다면 더 궁금해진다.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 답변은 참모들이 작성한 걸 토대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의 ‘외교 설화’는 윤 대통령 자신이 한술 더 뜨다 일으킨 것 아닌가.
대통령의 독단적 발언으로 한국이 쌓아올린 외교 성과들이 근저부터 흔들리고 있다. 대외교역이 경제성장의 버팀목인 한국에서 대통령의 입이 이토록 거칠어서야 되겠는가. 그 후과는 고스란히 한국 기업과 국민들이 감당해야 한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발언 때문에 주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이 교민들에게 신변 안전을 당부하는 상황이 초래됐다. 국빈으로 방문한 미국에서 윤 대통령이 또 어떤 발언을 할지 국민들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윤 대통령은 민감한 외교·역사에 대해 진중하고 정확히 발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