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베트남 관계, 중요해진 만큼 과거사 문제도 외면 말아야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 반 트엉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열었다. 양국은 외교안보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방위산업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 통관 과정을 간소화해 교역을 확대하고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도 하기로 했다. 한국은 베트남에 대해 해양치안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유·무상 개발원조(ODA)를 늘리기로 했다.

윤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은 수교 이후 양국 관계가 가장 우호적인 가운데 이뤄졌다. 양국 관계는 지난해 수교 30주년을 맞아 동맹 관계 바로 아래인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베트남은 중국, 미국에 이어 한국의 3위 교역국이다. 한국은 베트남 내 1위 투자국이고, 2위 원조국이다. 베트남에 한국인이 아세안 내 최다인 약 17만명 거주하고, 한국에는 베트남인이 중국인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약 23만명이 산다. 양국이 지난 30여년간 다방면에서 꾸준히 협력해온 결과이다. 특히 두 나라는 중국의 인접국으로서 대중국 관계의 전략적 고민을 공유한다. 윤석열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아세안 연대 구상은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과 마찬가지로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베트남과의 관계를 중시한다.

그러나 한·베트남 관계가 모두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과거사 문제를 놓고 양 국민들 사이에 마음 깊은 곳에서 화해가 이뤄지진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성찰적으로 언급했던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과 달리 윤 대통령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베트남 정부 입장은 ‘과거는 뒤로하고 미래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승리한 전쟁에 패배자인 미국 편으로 참전한 한국에 국가 차원의 사과를 요구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해를 입은 베트남 시민들의 입장은 다르다. 한 베트남인이 올 초 한국 법원에서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받았다. 이에 한국 정부가 학살은 없었다며 판결에 불복하자 베트남 정부는 “미래를 지향하지만 역사적 진실을 부정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양국 관계가 더 성숙해지려면 과거사를 직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한국인들이 베트남인들의 마음을 더 얻고자 한다면 정부가 법원 판결에 항소하며 다툴 것이 아니라 민간인 학살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고 적절한 사과와 피해 회복 조치를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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