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이균용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간 재판 경험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원칙과 정의, 상식에 기반해 사법부를 이끌어갈 대법원장 적임자”라고 지명 이유를 밝혔다. 모든 갈등 의제가 사법부로 몰려가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사법부 수장의 책임은 더 막중해졌다.
이 지명자는 사법개혁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 이후 김명수 대법원장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대법원장의 대법관 쪽지 제청 폐지,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 등의 제도개혁을 추진했다. 이 지명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사법개혁이 후퇴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대법원장의 권한을 강화하고, 관료화 체제를 강화하는 등의 퇴행이 ‘이균용 대법원’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줄 것을 당부한다.
이 지명자가 지난해 12월 대전지방변호사지 기고에서 “적어도 자유의 수호에 있어서 극단주의는 결코 악이 아니”라고 한 것을 보면 우려스럽다. 보수 성향인 그가 정권 비판세력을 ‘공산전체주의’라고 싸잡아 매도하는 윤 대통령과 적극적으로 ‘코드’를 맞추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6월 대법관 추천에서 특정 후보의 임명 거부를 시사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미 삼권분립 원칙이 훼손됐다. 유사한 사태가 ‘이균용 대법원’에서 재연된다면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이 지명자는 윤 대통령의 대학 1년 선후배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처신이 요망된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돼야 할 감사원·중앙선거관리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 등의 주요 직책에 윤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이 포진됐다. 동시에 정치적 중립을 의심케 하는 행위들이 빈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재판의 독립성과 신뢰성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사회의 보루다. 이 지명자는 법관들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성을 갖고 재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지명자가 윤석열 행정부에 맞서 사법부 독립성을 지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천명할 것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