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가 13일 박민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을 신임 사장 후보로 정해 임명을 제청했다. 이사 11명 중 야당 추천 5명이 “사장 공모 절차가 무효”라며 퇴장한 뒤 여권 추천 이사 6명이 일방적으로 박 전 논설위원을 후보로 선출했다. 마치 군사작전을 하듯이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11일 공석 중인 여권 보궐 이사를 추천해 대통령이 재가한 뒤 이틀 만에 사장 임명 제청 절차를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지난 4일 이사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낙점설이 돈 박 전 논설위원이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하자, 서기석 이사장은 당초 예정과 달리 결선투표를 연기해 버렸다. 다음날 여권 추천 이사가 사퇴하고 결선투표에 오른 다른 후보도 사퇴를 선언하는 전대미문의 파행이 빚어졌다. ‘낙하산 사장’을 속전속결로 임명하려다 탈이 나버린 것이다. 이 사태 후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와 보수 성향의 KBS노조 모두 사장 재공모를 요구했지만, 이사회는 사장 임명 절차를 강행했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공영방송 장악에만 혈안이 됐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여권은 지난 7월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쫓아낸 후 ‘언론 장악의 상징’이던 이동관 방통위원장을 임명했다. 그 전후로 방통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KBS 이사회,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를 여권 우위로 만드는 작업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선 온갖 무리수와 점령군식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5·18을 폄훼·왜곡한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와 차기환 변호사를 KBS 보궐 이사와 방문진 이사로 각각 임명했다. 지난 8월 해임된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은 법원의 해임처분 집행정지로 복귀했고, 김의철 전 KBS 사장도 해임정지 소송을 진행 중이다.
방통위·방심위는 ‘가짜뉴스 색출’이라는 미명 아래 언론 재갈물리기에 나섰다. 방심위가 인터넷 언론의 보도 내용을 심의하겠다고 나서고, 민족정기의 한자에서 ‘精’ ‘正’자 논란을 빌미로 삼아 KBS에 행정지도(권고)를 내리는 희한한 일도 벌어졌다.
윤 대통령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에 대해 “선거 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하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한 사실이 13일 알려졌다. 대통령이 변화를 주문하는 그 시간에 KBS 이사회가 공영방송 장악에 나선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성찰하고 국민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은 말뿐이지 국정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것이다. 공영방송 독립은 언론자유와 민주주의의 중요한 척도다. 강서구청장 보선의 교훈은 독주·불통하는 국정을 끝내라는 것이다. 그 변화 의지가 있다면, 윤 대통령은 KBS에 낙하산 사장을 임명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