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도시 울산에서 지난 6일 발생한 대규모 정전은 전력 인프라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변전소에서 28년 된 노후 개폐장치를 교체하던 도중 전력공급이 중단되면서 2시간가량 15만5000가구가 큰 불편을 겪었다. 2017년 서울·경기 20만가구의 대정전 사태 이후 6년 만에 발생한 대란이다. 빚더미에 눌린 한국전력이 시설투자는 물론 유지·보수까지 미루면서 산업의 핏줄인 전력망이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정전은 상습화되고 규모와 피해도 커질 수 있다. 한전의 적자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타개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정전사고는 갈수록 빈발하고 있다. 지난달 경기 평택시 전력공급 이상으로 용인 에버랜드의 롤러코스터가 운행 중 멈춰 서는 등 배전 관련 정전은 2018년 506건에서 지난해 933건으로 약 85% 급증했다. 한전의 적자가 쌓이는 것에 비례해 정전사고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전의 부채는 2019년 말 128조7000억원에서 줄곧 증가해 올해 3분기 ‘반짝’ 영업이익을 낸 상황에서도 204조원을 넘어섰다. 올해도 7조원가량 적자가 날 것이란 전망이 현실화되면 내년엔 한전채 발행 한도가 축소된다. 빚으로 돌려막기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한전은 지난 5월 내놓은 자구책에서 2026년까지 발전소와 송배전망 건설을 미뤄 1조3000억원을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설비유지 시공업체에 주지 못한 공사대금이 75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정부가 전기요금 현실화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마련한 고육책이지만, 이런 미봉책으로는 국가 전력망의 안정성이 침식되고 만다. 경영적자를 이유로 투자와 정비에 쓸 비용을 아끼려는 발상은 너무도 위험하다. 현대사회에서 공기나 다름없는 필수재가 이토록 불안정해진 현실이 한심스럽다.
충분한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이 해법이라는 건 이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올해 1·2분기 전기요금을 kwh당 21.1원 올렸으나 한전에 따르면 연내 25.9원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 전기를 팔면 팔수록 한전이 적자를 떠안는 기형적인 전력시장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내년 총선을 의식해 요금 인상에 소극적이다. 정치 셈법에 몰두하느라 국가 안위는 안중에 없는 것인가. 지금의 낮은 전기요금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대통령이 나서 국민에게 설득해야 한다. 현재처럼 정부가 결정하는 전기요금을 전문성과 독립성을 가진 전기위원회가 결정하도록 하는 조직개편 논의도 이참에 본격화해야 한다. 모두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됐던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