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사설

이미 뜨거운 지구, 첫 ‘녹색 총선’이 되길

기후악당 국가의 오명 끊으려면

새 국회선 기후교섭단체 만들고

굼뜬 정치에 녹색 리더십 세워야

갑진년 새해를 사흘 앞둔 29일 대구 달성군 국립대구과학관에서 관람객이 2024년 기후 예측 모델이 표시되고 있는 SOS(Science On a Sphere) 시스템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갑진년 새해를 사흘 앞둔 29일 대구 달성군 국립대구과학관에서 관람객이 2024년 기후 예측 모델이 표시되고 있는 SOS(Science On a Sphere) 시스템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모두 처음이다. 강원도에 겨울 폭우 234㎜가 내렸고, 12월 날씨는 영상 20도~영하 20도를 널뛰었다. 11월엔 ‘푸른 낙엽’을 봤다. 늦가을까지 더워 단풍이 들지 않다 갑자기 추워져 일어난 일이다. 여름도 힘겨웠다. ‘좁은 띠구름’이 동서로 횡단하며 사흘간 600㎜ 물벼락을 쏟더니, 8월엔 남북으로 내륙을 관통하는 대형 태풍을 처음 겪었다. 봄꽃과 싹은 어느 해보다 일찍 피고 냉해를 입었다. 사람들은 식목일(4월5일)을 3월로 당기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2023년 기후는 더 빨리 변하고, 4계절 따라 ‘기후 신기록’이 이어진 대한민국이었다.

변화무쌍한 기후는 국토를 할퀴었다. 1~5월 산불은 예년보다 2배 많은 509건 일어났고, 7월 폭우는 농경지 3만㏊를 침수시켰다. 그 수해 속 오송 지하차도에서 14명이 수몰되고, 예천 산사태 실종자를 찾던 해병대원이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8월 폭염은 새만금 잼버리도 중단시켰다. 저마다 준비·대응이 헐거워 인명 피해·나라 망신·사후 복구비를 눈덩이처럼 키운 기후재난이다.

기후는 일상과 민생도 바꿨다. 냉해·가뭄·수해를 겪은 과일·채소의 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가을 모기’는 더운 11월까지 극성 부리며 소 럼피스킨병을 옮겼다. 바다에선 매년 평균 3~5㎞씩 해양생물군이 북상해 동해 오징어·남해 멸치 어획량이 뚝 떨어졌다. 그 이동은 육상 식물·동물도 마찬가지다. 기후는 미국·프랑스의 전기차 보조금을 필두로 통상에서도 벽이 됐다. 중국을 겨눈 보호무역의 불똥이 한국에도 튀었지만, 시작일 뿐이다. 2026년 유럽은 수입품 탄소배출량을 따져 탄소국경세(관세)를 달리하고, 재생에너지만 100% 사용케 하는 ‘RE100’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납품업체를 옥죄는 국제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하고 말고 할 선택지가 아니다. 탄소중립은 이제 ‘먹고사는 밥’이 되고, 뒤처지면 생존이 힘든 ‘녹색장벽’이 됐다.

2020년 4월 뉴욕 기후정상회의 공식 용어가 ‘기후변화’에서 ‘기후위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3년 만인 지난해 7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열대화 시대”를 선언했다. 석탄화력발전 폐지는 7배, 저탄소 투자는 10배 더 속도 내야 2015년 파리협정이 목표한 ‘1.5도’(산업화 후 지구 기온 상승분)를 지킬 수 있다고 했지만, 그의 전망은 회의적이다. 의미 있는 걸음도 있다. 12월 두바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화석연료 감축’을 처음 합의하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3배 확대키로 했다. 미온적이던 미·중이 광활지에 태양광 시설을 짓고, 독일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 50%를 넘었다. 독일의 진보·중도·보수 정당이 몇 정부를 이어 뚜벅뚜벅 추진한 성과다. 배울 건 배워야 한다. 나라마다 제각각이나, 기후행동은 그렇게 국격과 대세가 됐다.

문제는 대한민국이다. 윤석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30%에서 21%로 줄인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새로 짜고, 2030년까지 목표한 탄소감축분의 75%를 임기 뒤로 미뤘다. 새해 예산부터 태양광 지원은 20~30%씩 잘렸다. 1인당 탄소배출량 최상위권인 한국이 COP28에서 ‘재생에너지 목표를 줄인 유일한 국가’로 지목돼도 누굴 탓할 수 없다. 핵폐기물 대책 없이 원전을 축 세운 ‘무탄소에너지(CF100)’ 제안은 세계 흐름과 겉돈다. 국회도 다를 바 없다. 법안 심사·처리권이 없는 국회 기후특위는 지난해 결론 없는 회의 4번 끝에 21대 국회가 끝나는 오는 6월까지 활동시한만 늦추고 개점휴업 중이다. 말 따로 행동 따로이고 이정표도 없는, ‘기후악당’ 정부와 국회의 민낯이다.

그 반작용일까 조바심일까. 2022·2023년 9월 서울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에 시민 3만명이 모였다. 기후 문제에 손 놓은 정치를 성토·압박한 자리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 달 전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제안하고, ‘총선 1호 영입’ 인사를 기후전문가로 택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기후변화에 대한 균형 있는 대응” 기조를 밝혔다. 환경·산업의 조화를 말한 윤 대통령과 뭐가 같고 다를지 보게 될 게다. 정의당·녹색당의 총선 선거연합은 기후가 고리가 됐다. 너나없이 총선 앞에 기후 띠를 두르지만, 지금 필요한 건 강력한 실천 의지와 행동이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 틀을 세우고, 기후재난도 복구 아닌 예방으로 정책 중심을 옮겨야 한다. 새로 구성될 22대 국회는 기후특위를 힘 있게 상설화하고, 초당적으로 정책·예산·입법을 주도할 ‘기후교섭단체’도 태동할 때가 됐다.

이 속도와 관성이면, 10년 내 닥칠 거라는 1.5도를 넘어 바다 플랑크톤 생태계가 무너지고 북극 땅이 녹아 메탄가스가 솟구친다는 2도도 막지 못한다. 기후위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종잡기 어려운 기후는 약자를 더 힘들게 한다. 정치가 무엇인가. 민생의 답과 희망을 주고, 나라의 길을 제대로 잡는 것이다. 굼뜬 정치에 ‘녹색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 새해 첫날인 1일 총선이 100일 앞으로 다가섰다. 선거제·신당·공천 안개가 걷히면, 4월 총선 레이스가 시작된다. 이미 뜨거운 지구, 첫 ‘녹색 총선’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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