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성 간호사 ‘태아 산재’ 첫 인정, 모성 보호 강화 전기로

지난해 6월 한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유선희 기자

지난해 6월 한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유선희 기자

근로복지공단이 위험한 근무 환경에 노출돼 선천성 질환아를 낳은 간호사의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2020년 대법원 판결로 제주의료원 간호사 4명의 자녀 질병이 산재로 인정받은 적 있지만, 공단이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공단은 자녀의 선천성 뇌 기형 질환에 대해 산재 신청을 한 간호사 A씨의 사례를 지난달 15일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고 21일 밝혔다. ‘태아산재법(산재보상보험법 개정안)’ 시행 후 2년 동안 승인 사례가 없어 ‘희망고문법’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을 ‘엄마 노동자’ 재해로 인정한 의미가 작지 않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평가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A씨는 2013년 둘째 임신 직후 약 6개월간 한 병원의 인공신장실에서 투석액 혼합 업무를 맡았다. 그는 이 업무를 하면서 초산 냄새가 심해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해 A씨 아이는 ‘무뇌이랑증’이라는 선천적 기형을 안고 태어났고, 2015년엔 뇌병변 1급 장애진단을, 2017년엔 사지 마비 진단을 받았다. 이번 산재 인정은 평가위원회에서 초산을 흡입할 시 뇌 기형을 유발할 수 있는 저산소증이 발생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 등이 근거가 됐다.

태아 산재 문제는 간호사들이 유독 약품을 다루다 선천성 심장질환 아기를 잇따라 출산한 ‘제주의료원 사건’으로 공론화됐다. 2020년 대법원이 이 병원 간호사 4명에 대해 처음으로 태아 산재 인정 판결을 한 후 태아산재법이 마련됐다. 그러나 공단이 태아 산재를 인정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고, 접수된 태아 산재는 6건에 그친다. 당국이 산재 인정에 인색한 것과 무관치 않을 수 있다. 노동자 배 속 아기의 안전까지 보호하겠다며 법을 만들어 놓고선, 정작 이 법 시행령에 화학적 유해 인자를 17개(1%)로만 한정했다. 긴 역학조사도 걸림돌이다. 그동안 부모가 겪는 정신적·경제적 고통은 헤아리기나 한 것인지 묻게 된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국가와 사회 책임이라는 공감대의 확산이다. 2세 질환이 산재로 인정되면, 여성노동자들의 작업환경도 바뀔 가능성이 크다. 태아산재법이 ‘죽은 법’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역학조사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 이젠 의사 판단으로 치료비를 지급하고, 그 후 산재 여부를 확정하는 ‘산재보험 선보장 제도’ 도입도 검토해 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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