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 대통령 김관진·김기춘 사면, ‘남용·편파’ 소리 안 들리나

윤석열 대통령이 설 명절을 앞두고 정치인과 경제인, 생계형 형사범 등 980명의 특별사면을 6일 단행했다. 특사 대상에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구여권 인사들과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구본상 LIG회장 등 재벌 총수들이 포함됐다. 윤 대통령은 “이번 사면은 활력 있는 민생경제에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지만, 특사 때 반복되는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혹평이 붙는다.

김 전 장관과 김 전 비서실장은 국가 권력을 이용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 김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 때 국군사이버사령부를 시켜 ‘댓글 공작’을 벌였다. 지난해 8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형이 선고되자 불복해 재상고했으나 지난 1일 돌연 대법원에 취하서를 제출해 형이 확정됐다. 김 전 실장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돼 지난달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형이 선고됐다. 김 전 실장도 어찌 된 영문인지 대법원에 재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사전에 대통령 특사로 선정될 거라는 정보를 접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사면 배경은 더 이해하기 어렵다. 이들은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지도 않았다. 권순정 법무부 검찰국장은 “장기간 쌓아 놓은 능력으로 국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도대체 이들의 어떤 능력이 국가에 필요하단 말인가. 총선이 다가오니 댓글 공작을 벌이고,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들을 또 탄압하겠다는 의미인가. 이들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윤 대통령의 검찰 재직 시 이뤄졌다. 언제는 적폐로 몰아 처벌했다가 지금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일방적으로 용서했다.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임기 2년도 지나지 않은 윤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벌써 4번째다. 박근혜 정부는 3회, 문재인 정부는 5회였다. 이번 특사도 윤 대통령은 정치적 형평성을 상실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 등에게 불법 사찰을 지시한 김대열·지영관 전 기무사 참모장이 대통령 은전을 받게 됐고, 노조 탄압 등 부당노동행위를 한 김장겸 전 MBC 사장 등 친여 성향 언론인들도 복권 대상에 포함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 댓글 공작’ 사건에 연루된 서천호 전 부산경찰청장도 형 선고 실효 및 복권 대상에 이름이 올랐다. 반면 야권 인사로는 심기준·박기춘 전 의원 정도가 포함됐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이번에도 제외됐다. 원칙이 없고 편파적인 대통령 특사는 사법 정의를 무력화하고, 국민 화합에도 무익하며, 정치·사회적 갈등을 심화할 뿐이다. 자기편과 재벌만 챙기는 대통령 사면권 행사는 멈춰야 한다.

군 사이버사령부에 ‘정치 댓글’을 작성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징역형이 확정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왼쪽)과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특별사면을 받았다.

군 사이버사령부에 ‘정치 댓글’을 작성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징역형이 확정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왼쪽)과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특별사면을 받았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