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본업 팽개친 의사들 탓에 ‘불법’ 진료에 내몰린 간호사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로 의료 현장에서 간호사들의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 심지어 의사 고유 업무까지 간호사들이 떠맡고 있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부분 마취와 피부 절개가 필요한 ‘케모포트’ 주사 삽입, 수술 보조 및 봉합, 교수 아이디를 이용한 대리 처방 등까지 간호사들이 담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응급 상황이라고 해도 엄연한 불법이다. 간호사들이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갖췄겠지만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하면 의료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간호법 제정 논의 과정에서 간호사들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와 실질적으로 업무를 분담해온 진료보조(PA) 간호사를 공식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의사단체는 간호사들의 주장을 일축했고, 정부와 여당도 야당 주도로 통과한 간호법에 반대 뜻을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전공의 일손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이 자의적으로 간호사 업무를 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법이고, 의료 사고 등으로 이어질 우려도 크다. 이번 사태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된 간호법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재차 확인됐다. 차제에 의료기관에서 간호사들의 권한을 명확히 하고, 간호사들이 할 수 있는 업무라면 의사들의 동의 여부를 따지지 말고 간호사들에게 전면 허용해야 한다.

환자들의 인권을 내세워 간호사들의 파업을 비판했던 의과대학 교수들의 이중적 행태도 비판받아야 한다. 지난해 7월 부산대병원 교수협의회는 “수 많은 환자들이 수술·시술과 항암 치료 등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며 간호사들의 파업을 비판했다. 그런데 요즘 의대 교수들은 병원마다 항암 치료가 밀리고 응급 환자들이 ‘병원 뺑뺑이’를 돌고 있는데도 전공의들의 이탈을 두둔하고 있다. 간호사들은 파업을 하면 안 되고, 의사들의 파업은 당연한 권리라는 것인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요, 천박한 선민의식의 발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3일 현재 전국 주요 100개 병원에서 1만 명에 육박하는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냈다. 정부는 이날 의사들의 집단 행동에 대응해 보건의료 재난 경보단계를 위기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하고, 공공 의료기관 진료 시간을 최대치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국의 공공병원은 코로나 19가 잠잠해지면서 지원액이 급감해 의료진 공백이 심각한 상황이어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공공의료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 지방과 서민의 의료 복지를 확충하고, 전염병 발생 상황 등에도 대비해야 한다.

대한간호협회 탁영란 회장(가운데)과 최훈화 정책국 전문위원(오른쪽)이 23일 서울 중구 협회 서울연수원에서 ‘의료파업에 따른 현장 간호사 업무가중 관련 1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대한간호협회 탁영란 회장(가운데)과 최훈화 정책국 전문위원(오른쪽)이 23일 서울 중구 협회 서울연수원에서 ‘의료파업에 따른 현장 간호사 업무가중 관련 1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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