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25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가능한 빠른 시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는 의향을 전한 사실을 공개했다. 기시다 총리도 이날 국회에 출석해 “납치문제 등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상회담이 중요하고, 나의 직할 수준에서 북한에 대해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일 모두 최고 수준에서 직접 소통이 이어지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은 것에 주목한다.
김 부부장 담화를 보면 아직 교섭에 돌파구가 마련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 부부장은 “일본이 지금처럼 우리의 주권적 권리 행사에 간섭하려 들고 더 이상 해결할 것도, 알 재간도 없는 납치문제에 의연 골몰한다면 수상의 구상이 인기끌기에 불과하다는 평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 비핵화와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 측 요구를 전부 수용할 순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기싸움 차원일 수도 있다. 양국은 2002년,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으로 큰 틀의 관계 정상화 원칙을 마련했지만 오랫동안 납치문제에 가로막혀 있다. 2014년 5월 스톡홀름에서 북한이 납치문제 특별조사위원회 설치에 일본과 합의했지만,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논의가 멈췄다.
이번 북·일 교섭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알 수 없다. 일본이 한·미·일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한과 입장차를 어떻게 좁힐지도 지켜봐야 한다. 다만 양측 다 관계개선 필요를 느끼고 있고, 양 정상이 의지를 보이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북·일관계가 언젠가는 정상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일본으로선 자신들의 식민지배와 침략 역사에서 유일하게 남은 과거사 청산을 해야 한다. 일본이 남북관계 개선의 고비마다 발목을 잡아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문제는 한국의 대응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국은 유독 북한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왔다. 미국 정부 내에서 핵 무장한 북한과의 충돌 가능성을 우려하며 대화를 모색하는 목소리가 나와 한·미 간에 방법론적 간극이 생길 기미를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의 지난해 대만 발언 이후 한·중관계가 악화돼 대북 협력이 원활하지 않다. 탈냉전 후 러시아와 누려온 우호 관계는 적대 관계로 변해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진지한 북·일 교섭마저 이뤄지면서, 한국이 부지불식간에 ‘외교적 미아’로 향해 가는 건 아닌지 자문해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