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친구

김봉선 논설위원

지난해 3월 고대 교우회가 선거법 위반으로 법정에 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사후약방문 격이지만 대선을 앞둔 2007년 11월호 교우회보를 통해 동문인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기사를 게재한 게 문제가 된 것이다. 회보는 12~13면에 걸쳐 ‘콘크리트 정글 같은 서울을 푸른 오아시스로… 불도저 산업역군이 세계적 환경 전문가로 거듭나다(미 시사주간지 선정 환경영웅)’라는 홍보성 기사를 실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회창 대선 후보와 BBK 의혹을 제기하던 반대 정치세력을 맹비난하는 동문의 기고문도 배치했다. 이때 교우회장은 이 대통령의 ‘친구’라는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다. 그 일로 그는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올해 4월 교우회장에 연임돼 건재를 과시했다. 이 대통령과 천 회장의 ‘각별한’ 관계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박연차 수사’ 또다른 핵 천신일

[경향의 눈]대통령의 친구

천 회장은 대통령과 40년지기다. 대통령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그를 만난다. 지난해 여름 대통령이 경남 저도의 해군 휴양지로 휴가를 갔을 때 동행했다. 청와대 행사에도 이따금 얼굴을 내민다. 이 대통령이 당선 직후 고대 교우회 행사에 참석, 구설수에 올랐을 때도 대선 지원과 우정에 대한 보답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1961년 경영학과와 정치외교학과에 각각 입학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명절 때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할 정도라고 한다. 대통령의 선거를 물심양면으로 도운 건 놀랄 일이 아니다. 번듯한 직함도 없는 그에게 ‘개국 공신’ ‘보이지 않는 실세’ ‘이명박의 남자’ ‘막후 실력자’라는 풍성한 별칭이 따라다니는 이유다.

천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박연차 수사’의 새로운 핵으로 부상할 조짐이다. 의형제를 맺을 만큼 가까이 지낸 30년지기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의 만남이 고리다. 그는 지난해 7월 국세청이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하자 구명 로비를 벌이고, 대책회의를 열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 의혹들은 구체성을 띠어가고 있다. “대선 직전 주식을 팔아 하루 만에 170억원을 현금화했다” “대선 기간에 박 회장으로부터 10억원을 받았다”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특별당비 30억원을 대납했다” 등등. 얼마전엔 이 정권이 민간기업 포스코의 회장 선임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는데, 여기에도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았다. 그를 출국금지한 검찰이 “아무런 혐의가 없는 사람을 그랬겠느냐”고 호언하는 마당이고 보면 뭔가 잡힌 모양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리에도 적잖은 친구들이 등장한다. 구속된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고시 공부는 물론 노 전 대통령이 젊은 시절 특허를 낸 독서대 사업을 함께할 만큼 절친한 친구다. 그는 권양숙 여사에게 박 회장의 돈을 전달하고, 청와대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특수활동비는 대통령 퇴임 이후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데 이를 우정이라고 불러야 할까. ‘박연차 수사’도 실은 대통령 친구의 얘기다.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30년 전부터 박 회장과 친분을 쌓았다. 친구이고 동생이다보니 자신들만의 생존 원칙과 의리로 뭉쳤고, 경계심도, 거리낌도 없이 유혹에 빠진 것이다. 친구가 선을 지키지 못하면서 ‘권력’과 동의어가 된 결과다. 대통령의 친구는 가깝다는 이유로 공사의 경계가 흐려지기 쉬운 만큼 위험한 권력이다. 헌법과 국민 위에 서기 십상이다.

선 넘은 친구는 ‘위험한 권력’

대통령과 막역한 친구라면 실제로 깨끗해야 하는 것은 물론, 보기에도 깨끗해야 한다. 의심받을 만한 일 자체가 아예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른바 ‘실세’들은 보이는 게 진실일 공산이 크다. 그 주변에 사람이 몰리는 것도 그런 이치에서 연유한다. 대통령에게는 사생활이 없다. 친구도 공적인 주목과 관리의 대상일 뿐이다. 자중자애하지 못한다면 대통령 친구 자격이 없다. 천 회장은 이미 대통령의 권력을 향유한 흔적들이 짙다. 그를 둘러싼 의혹은 깔끔하게 씻어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을 위해서도, 그를 위해서도 옳은 일이다. 박연차 수사의 교훈을 살리지 못하고 4~5년 뒤 ‘친구 게이트’를 다시 목도하게 된다면 현 정권은 물론이고 국민들에게도 큰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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