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방역체계부터 바꿔야

우희종 | 서울대 교수·수의학
[시론]구제역, 방역체계부터 바꿔야

정부가 열심히 방역에 힘쓰고 있지만 구제역은 확산일로에 있다. 전국적인 확산 상황에서 목격되는 것은 밤낮없이 방역에 노력하는 현장 담당자와 더불어 대량으로 매몰되는 동물들의 참혹한 광경이다. 희생된 동물의 숫자도 70만에 가깝고, 더욱이 경황없이 시행되는 살처분에 생매장당하는 동물의 모습도 보인다.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로 최선을 다하는 방역 당국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에 시민의 당혹은 물론 축산 농가의 마음을 생각하면 누구나 마음이 무겁다.

살처분이 부른 경제·환경적 피해

인수공통전염병이 아닌 구제역임에도 대량 가축 도살로 이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성체(成體) 치사율은 낮아도 어린 동물에서는 치사율이 높고 전염력이 매우 높아서 경제적 손실이 예상되고, 질병에서 회복된 동물도 성장이나 사료효율 등에서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단지 경제적 이유만으로 질병 발생 주변 일정 거리 내에 있는 감수성 동물이 대량 살처분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거의 맹목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매달리고 있는 살처분은 구제역 대책의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비록 구제역 병원체가 외부상태에서 생존력이 높지 않은 바이러스이기는 하지만 특정 환경에서 공기를 타고 가깝게는 10㎞, 멀게는 60㎞까지도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발병은 하지 않지만 구제역 병원체를 운반하는 동물도 있고, 특히 최근 국내에 급증하고 있는 야생 돼지에 의한 구제역 확산 가능성이 상존하기에 방역을 위한 가축만의 대량 살처분은 일정 규모의 발병에 유효할 뿐 현 국내 상황에서는 재고해야 할 방법이다. 성숙한 사회에서의 동물 생명권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차후로 한다 해도 특히 한국처럼 밀집된 사육환경의 조건에서 단순하게 살처분만을 고집하면 그에 따른 경제적 피해가 오히려 더 크게 된다.

더욱이 국내 상황에서 동물을 대량 매몰하는 방식은 환경 문제를 야기한다. 치료 불가능한 인수공통전염병인 광우병에 대처하기 위해 약 200만마리 정도의 소를 도축했던 영국에서 높은 비율로 사체를 소각했던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국과 같은 밀집사육 환경에서 일정 규모의 확산이 보일 때는 살처분보다는 즉시 백신 접종으로의 전환을 결정했어야 했다. 질병의 확산 규모에 따라 총체적이고 다양한 방역 대책과 결정이 신속하고 유연하게 뒤따르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 생산성만을 추구하는 산업구조 및 경제논리에 의한 열악한 공장식 사육과 산업 국제화로 구제역·조류독감 등 여러 질병의 사회문제화가 일상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질병의 사회문제화’ 대비를

이에 우리 생활 방식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요구되지만 최소한 제대로 된 방역만을 이야기한다면 국내 방역체계의 개선이 필수적이다. 좁은 영토의 한국에서는 전염병이 유행하면 전 국토가 초토화될 수 있어 광활한 미국과 전혀 다른 조건이다. 또한 동물 질병은 단순한 질병 상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좋으나 싫으나 식량 확보 문제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현재 국내 방역과 외부로부터의 검역을 담당하는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을 비록 규모는 작더라도 ‘국립수의과학검역청’으로 승격시켜 방역과 검역에 대한 충실한 연구 및 현장 인력 확보, 그리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전염병 확산에 전문적 권한을 갖고 신속하고 유효한 결정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끝으로 구제역 방역에 있어서 과도한 언론의 흥미 위주 보도 행태는 자제되어야 한다. 잘못된 방역 대처나 문제점 보도는 필요하지만, 인수공통전염병이라서 각 개인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굳이 일반인들에게 축산 현장을 지속적으로 반복 전달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지닌 생명에 대한 무감각을 그대로 안방 구석구석까지 확산시킬 필요는 없다. 이런 것을 안방에서 태연히 보고 듣게 되는 어린 미래세대를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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