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생존자들’

권영숙 | 서울대 교수

지난 4월10일 인천에서 ‘세월호 1주년, 우리가 진실을 규명하는 방법’ 제하의 강연을 했는데, 제주의 화물기사 김동수씨가 강연에 왔다. 그는 “너무 답답해서 왔다”고 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시론]세월호의 ‘생존자들’

그는 세월호 참사의 생존자다. 하지만 ‘생존자’인 그는 사람들의 주목도 관심도 받지 못한다. 그는 세월호에 갇혔던 학생들을 구조한 이른바 ‘의인’으로만 불린다. 그가 매스컴에 등장했던 이유도 세월호 생존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세월호의 ‘아이들’ 스무명을 구조한 의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처럼 자신의 화물차와 함께 세월호에 탑승했다가 살아남은 30명의 화물차 기사들은 어른이면서도 배에서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죄인 취급을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왜 이 사회는 세월호 생존자들을 이렇게 대할까. 사실 그 참극의 생존자야말로 ‘피해자’가 아닐까. 우리는 지금이라도 그들의 증언을 경청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과도한 ‘세월호-아이들’의 프레임 속에서, 그 지옥 같던 배에서 수장될 뻔하다가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특히 어른들은 죄인이 되고 만다. 세월호에 있었던 이른바 일반인들은 90명 정도라고 한다. 김동수씨는 토론에서 말했다. 작심한 발언이었다.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에게도 등급이 있다고. 우선 실종자 가족, 그리고 단원고 아이들의 학부모 유족, 그리고 단원고 생존자 아이들의 학부모들, 그리고 자신들-그 배에 화물차 30여대와 함께 탔던 자신들은 그중 가장 마지막이라고.

사실 울분에 찬 그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이 말을 지면에 옮기는 것이 적절할까. 하지만 그의 증언을 신중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는 지난 3월 자살 시도를 했었다. 그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면서 지금도 몸 위를 벌레들이 스멀스멀 기어가는 환시에 시달리는, 그래서 매우 쇠약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이 모든 피해자들 중에서 가장 잊혀진, 아니 피해자라고 보지도 않는 이들. 바로 세월호 선원들. 그중 아르바이트 선원들. 그중에서도 미성년자 일당 알바 노동자들. 그들도 아이들이고 학생들이지만, 단 하루 노동자인 순간 그냥 ‘비정규직 알바 노동자’로 취급받았다. 그들은 승선자 명단에도 누락됐고, 회사의 장례비 상조도 받지 못했고, 안산의 합동분향소에 안치되지 못한 채 쓸쓸이 사라졌다. 가정해 보자. 만약 누군가가 어떤 일터, 예컨대 물놀이 시설에서 일하다 그 회사의 숨겨진 비리로 사고가 나고, 정부의 늑장 대응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여겨진다면, 그들 역시 피해자다. 그리고 ‘산업재해’로 처리한다. 아닌가? 그들은 고객을 안전하게 대피시켜야 하지만 그들 역시 회사의 미흡한 안전수칙과 구조적 결함으로 인한 희생자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배의 비정규직 선원들 - 명령권도 결정권도 없던 그들은? 단지 그 배에 승선한 승무원들이라는 이유로, 배와 함께 목숨을 같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혹은 그들도 배와 함께 수장되어야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지 않는지. 또 세월호 생존자들, 제주의 화물기사들은? 그들의 유일한 전재산이 세월호 배안에 갇혀 있다. 생계를 잃은 그들에게, 자식 죽은 부모도 있는데 라는 식의 시선이 꽂혀있어 괴롭다고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왜 우리는 삶과 죽음, 노동과 생명을 분리하여 사고하는가? 세월호는 과연 보편성을 확장했을까? 김동수씨를 ‘단원고 아이들’을 구출하려 한 ‘의인’으로만 인정하려는 이 프레임은 과연 적절한가? 우리는 세월호의 의미를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의 슬픔에 대한 공감을 통해서, 노동과 생명이 얽혀 일상적이고 구조적인 죽음들이 만연한 ‘대한민국’이라는 세월호에 대한 보편적인 각성을 만들었는가? 특별법과 시행령으로 좁혀진 세월호 1주년. 하지만 세월호를 통해서 이 사회에 물어야 할 것이 아직 너무도 많다. 그래서 세월호는 여전히 정치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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