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팽창의 뿌리

장상환 | 경상대 교수·경제학

크게 부풀어 오른 가계부채가 새해 한국 경제의 최대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 가계신용 잔액은 2009년 776조원에서 2015년 말 1200조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한국은행의 ‘자금순환 통계’에 따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 금융부채는 2015년 9월 말 기준으로 1385조원에 달한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8년 150%에서 170%로 올라갔다.

[시론]가계부채 팽창의 뿌리

가계부채 증가는 일시적으로는 주택 구입 증가, 소비 증가 등으로 경제활성화에 기여한다. 그러나 빚을 갚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소비가 위축되어 경제 침체를 초래한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는 과대한 채무에서 비롯되었다.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이후 한국 금리도 인상될 것이므로 가계부채의 위험성은 커지고 있다.

가계부채가 이렇게 증가한 데는 금리 인하와 부동산 규제 완화 등 부채 증가를 통한 정부의 경제활성화 정책 탓도 있다. 그러나 가계부채 팽창의 근본적 뿌리는 불평등이다. 외환위기 이후 소득 불평등이 심해졌다. 국세청 과세자료에 근거한 소득 불평등 정도는 OECD 국가들 중에서 높은 편이다. 소득이 부족한 빈곤층과 중산층은 돈을 빌려 소비하고 대학 등록금을 내며 집을 산다. 고소득층은 쓰고 남은 돈을 금융자산과 부동산으로 축적한다. 소득 불평등이 심할수록 빚에 대한 수요와 금융자산의 공급이 증가하는 것이다. 임금 불평등을 낳는 것이 비정규직 팽창과 정규직과의 보수 격차 확대다. 자산 보유 불평등 심화에 따른 소득 불평등도 심하다. 김낙년 교수 추계에 의하면 상위 10%의 자산 점유율은 2001~2007년 평균 63.2%에서 2013년 66.4%로 높아졌다. 국민총소득 대비 가계소득 비중은 1995년 70.6%에서 2012년 62.3%로 낮아진 반면, 기업소득 비중은 같은 기간 16.6%에서 23.3%로 상승했다.

소득 불평등은 권리의 불평등 탓이다. 노동시장에서 임금 불평등 심화를 막을 수 있는 힘은 노동조합인데 파업손해 배상소송과 가압류, 업무방해죄 적용 등으로 노동기본권이 무력화되고 있다. 노동조합 가입 비율은 1990년대 초의 20% 수준에서 9.9%까지 내려갔다. 2013년 노조 가입률은 정규직이 13.9%, 비정규직이 1.4%이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은 노동자들의 소득과 권리를 약화시킴으로써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가계부채 증가에 기름을 붓는다.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은 빚 갈아타기로서 미봉책일 뿐이다. 가계부채 문제의 뿌리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노동시장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노동환경, 노력과 부담, 책임, 지식과 기능 등을 평가해 지급하는 직무급 체계를 확립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차별을 줄여나가야 한다.

둘째, 노동기본권을 보장해 노동조합이 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법으로 임금차별 금지 원칙을 세워도 정부가 이를 강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노동자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단체협약, 노동위원회 제소나 소송을 통해 문제를 시정해야 한다. 노동조합 조직률을 현재의 9.9%에서 5년 후 20%, 10년 후 30%로 높여가야 한다. 정부가 기업의 노동조합 억압행위를 철저히 막아줘야 한다.

셋째, 증세와 사회복지 지출 확대를 통해 빈곤층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시장소득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 국민소득 대비 금융자산의 크기를 말하는 금융연관비율을 보면 빈곤 문제를 금융으로 대처하는 미국, 일본, 한국 등이 약 10배로 높은 반면 증세와 사회복지 재정으로 대처하는 독일은 약 6배로 훨씬 낮다.

경제위기는 가계와 기업의 대규모 파산을 통해 파국적 방식으로 부채와 자산을 축소하는 것이다. 공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부채를 털어줘야 한다. 한국은 경제 수준으로는 이미 선진국이지만 N포세대, 금수저,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행감이 크다. 불평등을 시정해 경제성과를 고루 나누도록 하는 것이 다가오는 경제위기를 막고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핵심 과제다. 올해 총선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이를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디디기를 기대한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