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존중 행정과 사법은 어디에?

오민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지난여름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건설현장 사고 소식을 접해야 했다. 부산 아파트 공사장 엘리베이터에서 청소하던 작업자 2명 추락사(6월6일), 같은 부산에서 엘리베이터 수리를 하던 20대 노동자 홀로 일하다 사망(7월10일), 속초 공사장에서 이주노동자 포함 3명의 작업자가 엘리베이터 추락으로 사망(8월14일)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시론]노동존중 행정과 사법은 어디에?

계절이 바뀌었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지난 계절과 똑같다. 지난달 20일 현대중공업에서 절단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철판 사이에 목이 끼어 사망했고, 불과 6일 후에 대우조선에서 10t 블록에 작업자가 깔려 목숨을 잃었다. 사망사고 피해자들 대다수가 하청노동자였다는 사실은 이제 놀라운 얘기도 아니다.

계절이 바뀌어도 들을 수 없는 소식들이 있다. 이렇게 수많은 사망사고가 벌어져도 사업주나 기업의 책임자 누가 처벌을 받았다는 얘기들 말이다. 지난 1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매년 2000명의 노동자들이 산재로 죽어가는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실형을 받는 사례는 1%도 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나마 위 사례는 검찰이 기소해 재판에라도 회부된 사건들에 해당한다. 매년 수천 건의 사건이 고용노동부에 접수되지만 재판에 회부되는 건 그중에 10%도 채 안된다는 사실을 보태면, 사업주가 산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받을 가능성은 0.1%를 밑돈다. 상황이 이렇다면 대체 어떤 사업주가 법을 지키려 하겠는가.

산업재해 문제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주요 사건들, 아사히글라스·파리바게뜨·한국지엠 창원공장 모두 직접고용 시정지시와 과태료 부과절차가 진행된 바 있다. 이들 사업장에 각각 17억8000만원, 162억원, 77억3000만원의 과태료 부과 또는 사전 통지절차를 진행했으나 이들 사업주 모두 시정지시도 따르지 않고 과태료 부과에도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대부분 김&장을 비롯한 대형 로펌들이 사건을 수임했으니 이들에 돈벌이만 시켜준 꼴이다.

반대로 불법파견 판정으로 직접고용 혜택을 받아야 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히려 집단해고라는 탄압을 받았다. 전범기업으로 김&장의 변호를 받아온 아사히글라스는 5년째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 복직을 거부하고 있다. 한국지엠 비정규직은 지금도 불법을 시정하라는 당연한 요구를 내걸고 단식농성·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40일 전에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을 받은 톨게이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집단해고 상태에서 ‘직접고용’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며 농성을 지속하고 있다. 하청노동 사용은 불법이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도로공사 이강래 사장에 대한 범죄행위 수사나 압수수색 소식은 들을 수가 없다. 오히려 그는 ‘자회사’라는 변형된 하청노동을 버젓이 강요하고 있다.

10년 전 표창장 위조 여부를 밝히기 위해 실시된 검찰의 압수수색, 그러나 불법파견과 산업재해 등 기업범죄에는 결코 검찰이 투입되지 않는다. 검찰은 불법파견 응징이 아니라 오히려 법원이 불법으로 판결한 절반만 기소하며 재벌 봐주기를 했다. 검찰의 봐주기 기소 내용대로 시정지시를 내린 노동부에 항의하던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조리 연행되어 유치장 신세를 져야 했다. 이쯤 되면 검찰이 섬기는 주인은 여당도 야당도 아닌 재벌과 대기업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사망사고가 이어질 때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기업범죄 특별수사대’를 설치했다면? 불법파견을 책임져야 할 원청 사업주들에 대한 즉각적인 압수수색과 소환조사가 이뤄졌다면? 악질범들 구속기소, 투명한 수사결과 발표, 중형 구형과 일벌백계를 해냈다면? 김용균 노동자가 홀로 일하러 나가는 일도, 죽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 정부는 추락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고, 조선업 중대재해는 전문가들과 함께 사고 예방대책을 논의했던 의제이기도 하다. 정부가 중점적으로 감시·점검하겠다는 분야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당장 외부 파견검사들을 복귀시켜 중대재해 원인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에 투입한다면 OECD 사망사고 1~2위를 다투는 부끄러운 일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불법파견 피의자 이강래 사장과 재벌 회장들을 검찰청 포토라인에 세우고,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은 모두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불법파견과 함께 임금차별도 사라지고 소득주도성장까지 덤으로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이거야말로 노동자·시민의 피부에 와닿는 검찰개혁 방안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정부가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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