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의 잇따른 건강 사고, 정부가 답하라

윤영호 | 서울대 의대 교수

지난 4월30일 핀란드 주재 문덕호 대사가 급성 백혈병으로 입원한 지 1주일 만에 사망했다. 100세 시대에 한국의 외교관이 환갑도 안된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작년 11월 건강하게 부임했는데 입원 1주일 만에 사망이라니. 상당히 진행되도록 진단을 못했다는 건데, 두 차례 현지 병원을 방문했으나 ‘축농증’으로 진단해 치료 시기를 놓쳤다는 설명이다. 업무로 인한 과로와 핀란드의 특수한 겨울철 기후환경으로 백혈병이 발생했다고 한다. 국정감사 때 원혜영 의원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한 질의에서 확인됐다.

[시론]공무원들의 잇따른 건강 사고, 정부가 답하라

외교부는 병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고 적절히 치료받지 못한 핀란드 의료체계 특수성을 사망원인으로 들었다. 성인에게 생긴 급성 백혈병이라도 본국으로 이송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고 문 대사가 한국에 있었더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해외에 근무하는 공무원의 건강 문제를 해당 나라 의료제도 탓으로 돌리는 건 ‘선진국’의 태도로 적절치 않다. 현지 의료 현실에 맞는 건강·질병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국가 책임이며 마땅히 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

작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해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외교부 김은영 국장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작년 12월 국회에서 기획재정부 예산실 소속 김모 서기관도 뇌출혈로 쓰러졌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감액 심사에 대응하기 위해 국회에서 대기하다 그랬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한다고 하지만 과연 지켜질까? 집중적인 업무강도는 더해질 것이다. 과로사가 줄어들지 의문이다. 올해 7월에는 경남도청에 근무하는 40대 공무원이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이 제기됐다.

일회성 건강검진이나 일부 건강프로그램만 제공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직원들 건강을 체계적·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하버드대 보건경제 연구팀에 따르면 기업의 건강관리 투자는 1달러당 3달러의 생산성 향상으로 나타났다. 이제 직원 건강관리는 비용이 아닌 투자라는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한다. 미국은 2008년부터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과학적인 방식을 지원하고 세제혜택을 주었다. 일본은 2016년 경제산업성이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건강경영에 투자했다. 중앙정부 기관 공무원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인사혁신처가 솔선수범해 건강관리체계를 진단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5월 공관장 신임장 수여식 환담 자리에서 문 대통령도 “임무가 막중해 공직자로서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며 “그것이 대한민국을 위하는 길임을 잊지 말아 달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비단 공무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과 압박으로 기업 노동자는 더 심각하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사고뿐만 아니라 만성질환으로 인한 노동자 사망이 늘어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어떤 직업이든 건강이 중요하지 않은 직종은 없다. 굳이 선망의 대상인 공무원들 건강에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며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들에게 국가 운명이 달렸기 때문이다. 건강 투자는 몇 배로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성공사례는 기업으로, 사회로 전파된다. 정부가 답해야 한다. 고 문덕호 대사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다 순직한 공무원들의 명복을 빌며 병상에 누워 있는 공무원들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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