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희대의 벤처 사기극

박문규 논설위원

올 초 선보인 <더 울프 오브 스트리트>는 1990년대 미국 월스트리트를 들썩이게 한 희대의 사기꾼 조단 벨포트의 실화를 그린 영화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주인공 조단 역을 맡았다. 명석한 두뇌의 조단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월가를 농락하며 26살의 나이에 꿈에 그리던 백만장자가 됐다. 너무 손쉽게 돈을 번 조단은 결국 방탕한 파티문화와 마약에 빠진 채 FBI에 쫓기다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되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제대로 사기치고 화끈하게 즐겨라’는 영화 부제가 말하듯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월가 풍속도를 잘 담아냈다는 평을 들었다.

영화 같은 일이 실제 일어났다. ‘벤처 신화’의 상징으로 주목받던 가전업체 모뉴엘 얘기다. 모뉴엘에 대한 관세청 조사 결과를 보면 기가 막힌다. 위장 수출입을 통해 받은 사기 대출만 3조2000억원에 달한다. 대당 1만~2만원짜리 PC는 250만원의 고가 수출품으로 둔갑했다. 홍콩에 유령 회사를 만들어 마치 정상 수출거래가 이뤄진 것처럼 서류를 조작했다. 빌 게이츠가 칭찬했다는 홈시어PC도 2007년 버전이었다고 하니 천하의 IT 전문가도 감쪽같이 속은 셈이다.

이 회사 박홍석 대표(52)의 돈 씀씀이도 화제다. 그는 440억원의 비자금 중 상당액을 카지노에서 탕진했다. 재벌을 흉내낸 듯 캘리포니아 저택을 구입하고 제주에 16억원짜리 호화 별장도 사들였다. 본업과는 무관한 주식·연예기획사 투자에도 손을 댔다고 한다. 기발한 수법 하나로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그도 쇠고랑 신세를 면치는 못했다.

더 황당한 것은 속수무책으로 놀아난 정부와 금융당국이다. 근거 없는 수출실적만 보고 ‘히든챔피언’이라는 보증서를 발급한 정부나 수출서류 한 장에 수조원을 빌려준 금융사는 사기 방조범이나 다름없다. 수출기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정부의 그릇된 행태가 빚은 결과다.

모뉴엘이 관심을 끈 것은 ‘무모한’ 도전정신 때문이다. 삼성·LG가 버티는 철옹성 같은 가전시장에서 “한판 붙자”며 달려들 기업은 흔치 않다. 신생 벤처의 성공확률은 채 3%도 안된다. 모뉴엘 신화는 사기극으로 결론났지만 그들의 벤처 정신마저 훼손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벤처는 우리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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