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수라간, 소주방

이기환 논설위원

“젓수시옵소서.” 임금에게 수라를 대령할 때는 기미 상궁이 소주방에서 만든 음식을 먼저 맛보고 ‘이상무’ 판정을 내린 뒤에야 ‘드시라’고 내놓았다. ‘수라를 젓수다’는 표현은 임금에게만 쓰는 극존칭이었다. 상민은 ‘밥을 먹다’, 사대부는 ‘진지를 드시다’인데, 천민은 ‘끼니를 때운다’고 했단다. 어쨌든 임금은 하루 다섯 번 수라를 들었고, 그 가운데 12첩 정식을 두 번이나 차렸다니 참 많이도, 자주 드셨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재료가 겹치지 않도록 각 지역 특산물로 반찬을 구성했다고 한다.

임금의 취향도 제각각이었다. 예컨대 세종은 고기를 좋아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죽했으면 부왕인 태종이 “주상(세종)은 고기가 아니면 진지를 들지 못하니 내가 죽더라도 (고기를) 드시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을까. 연산군의 입맛도 까다롭기로 악명 높았다. “사슴 꼬리와 사슴 혀를 올려보내라”(1499년). “검은 엿이 맛이 좋구나. 중국산이라는데 만드는 법도 배워봐라”(1502년). 매일매일 임금의 건강과 입맛을 살펴 메뉴를 정했을 이들의 노심초사가 떠오른다. 상선(내시부 총책)과 사옹원 숙수(남자 요리사), 그리고 상식(종5품 궁녀) 등이 까다로운 임금의 취향을 만족시키느라 머리를 맞댔다.

‘지존(임금)의 음식’을 관장하는 수라간의 관리 또한 엄격했다. 1478년(성종 9년), 수라간에서 은주발 뚜껑을 훔친 이가 즉시 참형을 받았다. 하기야 수라에 독을 탈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실제로 경종 때(1720년) 왕세제(훗날 영조) 측의 사주를 받은 수라간 나인이 수라에 독을 탄 일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른바 경종 독살미수 사건이다.

궁중의 부엌인 경복궁 소주방(燒廚房)이 복원을 끝내고 오는 5월 완전 개방된다고 한다. 궁금증이 남는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보듯 소주방은 궁녀들만의 공간이었을까. 그런 기록은 없다. 되레 사옹원 숙수들이 요리를 주도하고, 궁녀들이 보조했을 가능성이 크다. ‘소주방’과 ‘수라간’도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약간 다르다고 한다. 장경희 한서대 교수는 “소주방은 주방의 개념이고, 수라간은 소주방에서 만든 음식을 법식에 따라 임금의 밥상에 올려보내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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