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직지의 ‘타향살이’

최민영 논설위원
프랑스 파리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11일(현지시간) 열린 ‘직지(直指)’ 공개 특별전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사전공개회에서 공개된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 문화재청 제공

프랑스 파리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11일(현지시간) 열린 ‘직지(直指)’ 공개 특별전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사전공개회에서 공개된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 문화재청 제공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인 불조직지심체요절(직지)이 1377년 인쇄된 곳은 충북 청주 흥덕사다. 제작 비용을 전담한 이는 ‘묘덕’이라는 법명의 비구니로 전해진다. 왕실이나 문벌귀족 출신으로 추정되는 그는 이듬해 여주 취암사의 직지 목판본 간행 비용도 시주했다. 역대 부처와 조사의 가르침을 모은 직지의 원작자는 고려 말 승려인 ‘백운화상’ 경한이다. 54세의 늦은 나이에 중국으로 유학가 불교를 배운 그는 다양한 수행법을 포용하며 무심(無心)한 경지에 오르는 것을 강조했다. 공민왕이 왕비 노국 공주를 기리려 창건한 흥성사 주지를 지낸 그는 ‘이르는 곳이 모두 돌아갈 길이요, 만나는 곳이 모두 고향’이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입적했다. 이후 제자인 석찬과 달잠이 스승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려 금속판본 작업에 가세했다.

직지의 존재를 기록한 이는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이후 부임한 프랑스 통역서기관 모리스 쿠랑이었다. 훗날 유럽 최초 한국사 강의를 리옹대학에 개설한 이다. 1901년 ‘조선서지’에 소개한 한국 자료 3821종에 직지를 담았다. 직지 하권은 초대 주한대리공사 콜랭 드 플랑시의 짐편에 실려 프랑스로 건너간 뒤 1911년 부유한 보석상이자 순수예술 수집가인 앙리 베베르에게 180프랑에 팔렸고, 그의 유언에 따라 1952년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BnF)에 기증됐다.

직지가 구텐베르크 성서(1455년)보다 78년 앞선 금속활자임을 증명한 이는 한국인 여성 박병선 박사다. 1967년 유학 당시 국립도서관의 한국 코너 귀퉁이에 꽂힌 직지의 마지막 장에서 간행연도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수돗물로 허기를 면하는 가난을 딛고 인쇄술 자료를 섭렵해 1972년 고증에 성공했다. 2001년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도 그의 공이 크다.

직지가 12일(현지시간)부터 석 달간 파리 국립도서관에 전시된다. 1973년 ‘동양의 보물’ 전시회 이후 반세기 만에 다시 수장고에서 나왔다. ‘타향살이’ 중인 직지를 한국에서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약탈·도난 문화재가 아니라 국내 반환은 쉽지 않고, 프랑스 측은 압류 가능성 때문에 전시 대여를 꺼린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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