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사판승’ 자승 스님 입적

윤호우 논설위원
30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 마련된 자승스님 분향소에서 스님들이 추모 법회를 하고 있다. 자승스님은 경기 안성 칠장사에서 화재로 입적했다. 연합뉴스

30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 마련된 자승스님 분향소에서 스님들이 추모 법회를 하고 있다. 자승스님은 경기 안성 칠장사에서 화재로 입적했다. 연합뉴스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는 요 근래 조용해졌다. 2018년과 지난해 한 후보가 나와 당선됐다. 역대 선거 때마다 종회 종책모임 간 이합집산으로 치열했던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잇따른 ‘조용한 선거’의 배경에 실세인 자승 스님이 있다는 사실은 불교계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자승 스님 뜻이 최대 종책모임인 ‘불교광장’을 통해 전달되고 관철되면서, 이른바 열띤 총무원장 선거가 사라졌다. 직책은 강남 봉은사·‘상원결사’ 회주였지만, 자승 스님에게는 ‘강남 총무원장’ ‘종단 최고 실력자’라는 별칭이 붙었다.

지난 29일 저녁 불이 난 경기 안성 칠장사 요사채 내부에서 자승 스님의 법구가 발견됐다. 유서를 남겼지만, 불과 이틀 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대학생 포교 의지를 밝힌 터라 불교계에서는 갑작스럽고 의아스러운 소식이었다. 경찰은 원인 규명을 위한 합동 감식에 착수했다. 조계종은 30일 자승 스님이 스스로 ‘소신공양’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장례는 오는 3일 서울 조계사에서 종단장으로 치러진다.

자승 스님은 2009년 역대 최고 지지율로 총무원장에 당선된 후 지금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은사 스님인 정대 전 총무원장에게서 배운 탁월한 정치력은 전국 24개 교구본사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꿰뚫고 종회 종책모임이라는 세력을 통일시켰다. 2013년 재선됐고,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종단을 지휘하는 힘은 여전해 가히 10여년간 ‘자승 스님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 아래 조용한 숨죽임에 대해 누군가는 ‘빛’이라고 할 수 있지만, 1인 독주의 ‘그림자’도 컸다. 대표적 사판승(事判僧)인 자승 스님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전후 정치판에도 등장해 정치승이란 비판을 들었다. 조계종 노조원이 봉은사 앞에서 스님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하는 등 종단 내 민주주의는 현격히 후퇴했다.

불교의 진리처럼 세상은 ‘무상(無常)’해 항상 그대로 있지 않는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뜻밖의 입적과 경찰 수사, 그리고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라는 한글 열반송은 권력의 덧없음을 말해준다. 그가 떠난 후 불교계가 권력의 공백을 힘이 아닌, 온전히 불심으로만 채우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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