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 ‘두오모’(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는 르네상스 건축의 걸작이자 세계문화유산이다. 전 세계 관광객 발길이 넘쳐나는 명소이다보니 낙서가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성당을 주 배경으로 삼은 일본 소설·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가 2000년대 초 히트한 뒤로는 일본인·한국인 낙서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2008년엔 일본 대학생 6명이 성당 대리석벽에 이름과 학교명을 유성펜으로 남겼다가 적발돼 국제 망신을 사고 눈물로 사죄한 일이 있었다. “한국 ○○○ 왔다감” “10년 뒤 다시 올 거야” 같은 한글 낙서도 많다.
특수장비로 지워내는데도 낙서가 끊이지 않아 골머리 앓던 두오모 측은 2016년 ‘디지털 낙서장’을 설치하는 묘안을 냈다. 두오모에서 가장 낙서가 많은 종탑 입구에 태블릿 컴퓨터 3대를 놓은 것이다. 관광객들이 나무·대리석 등 배경화면을 고른 뒤 스프레이·립스틱·손끝 같은 다양한 낙서 도구를 선택해 메시지를 남길 수 있게 한 장비였다. 사람들의 ‘원초적’ 낙서 욕구를 풀어주는 이 방책으로 문화재 직접 훼손을 상당 부분 억제하는 효과를 봤다고 한다.
한국 대표 문화유산인 경복궁에 연일 ‘낙서 테러’가 자행되고 있다. 지난 16일 새벽 경복궁 서쪽 담장 일대 44m가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된 데 이어 17일 밤에도 문화재청이 가림막을 설치하고 복원 중인 영추문 왼쪽 담장에 또 다른 낙서가 추가됐다. 붉은색 스프레이로 특정 가수와 앨범 이름을 쓴 두번째 낙서는 18일 20대 남성 용의자가 자수해 모방범죄로 밝혀졌다. 경찰이 추적 중인 첫날 범행 용의자들은 ‘영화 공짜’ 문구와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 이름을 대대적으로 낙서하곤 인증 사진까지 찍는 대담함을 보였다.
심심하고 지루할 때 책 구석이나 빈 종이에 낙서 안 해본 이는 없을 것이다. 낙서는 각자 본연의 마음 그대로를 표출하는 수단이라고 한다. 하지만 문화재 낙서는 아니다. 자기주장이나 상상력을 펼치는 행위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낙서로 훼손된 문화재 복구에 막대한 세금과 시일이 필요한 건 말할 나위 없다. 후대까지 상처를 남기는 명백한 범법 행위다. 게다가 실수도 아니고, 무언가를 홍보하며 시선을 끌려고 고의로 저질렀다면 엄벌을 받아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