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발발

도재기기자

‘민주화 열망’ 핏물이 들다

1980년 5월18일 아침, 광주 전남대 정문 앞에는 50여명의 대학생들이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학교를 점거한 비상계엄군이 이들의 등교를 막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휴교령을 철폐하라” “계엄을 해제하라”고 외치며 계엄군에 맞섰다. 군인들은 무차별 구타를 시작했고, 학생들은 ‘오월의 붉은 피’를 흘려야 했다. 결국 학생들은 금남로로 나섰다.

[어제의 오늘]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발발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물꼬가 터진 것이다. 쌓였던 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폭발한 것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기대되던 서울의 봄을 무참히 짓밟고,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 당연히 국민들은 저항했고, 저항의 힘은 더 커져갔다. 이미 5월15일 전국 곳곳에서 민주화 요구 시위가 벌어졌고, 군사정권은 17일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군인들이 민주화운동의 주요 거점이던 대학들을 장악했다. 전남대생들과 계엄군의 대치도 그 중 하나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 아래서도 시민들이 하나가 돼 27일까지 이어졌다. 광주시가 최근 29주년을 맞아 당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사람을 집계한 결과 모두 5189명으로 확인됐다. 사망자가 155명, 행방불명자가 76명, 부상 뒤 숨진 사람이 101명, 부상자가 2277명 등이다. 아직도 연고가 확인되지 않아 묘비명도 없이 묻혀 있는 희생자도 5명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진상 규명 등에서 성과를 거뒀고, 보상과 명예회복, ‘사태’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됐다.

이제 5·18은 세계적으로 부당한 권력에 맞선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는다.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1993년 설파했듯 “1980년 5월18일을 기해 광주는 남한 지도에 표시된 작은 도시가 아니라 동시대적 세계의 한 이념”이 됐고, “폭력과 부정에 항의하여 목숨을 바친 민주주의적 시민의 용기와 감동적인 희생정신을 뜻하는 추상명사”가 된 것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5·18정신을 계승하자는 각종 행사가 열린다. 하지만 5·18이 그저 과거의 한 사건으로 기념되고, 박제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많다. ‘어제’가 아니라 ‘오늘’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다. 더 나은 민주사회를 위해 부당한 권력, 비뚜룸한 정책에 저항하는 것은 지금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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