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는 지금 최대 위기···팬 퍼스트 아니면 희망이 없다”

차준철 논설위원

프로야구 40년 산증인, 허구연 KBO 총재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원년부터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다 지난 3월 야구인 최초로 한국야구위원회(KBO) 수장에 오른 허구연 총재가 지난 9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프로야구 40년을 돌아본 뒤 향후 계획을 말하고 있다. 그는 “지금 프로야구는 최대 위기”라며 “프로야구 콘텐츠의 가치를 높이고, 팬을 우선하는 야구로 인기를 되살리겠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원년부터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다 지난 3월 야구인 최초로 한국야구위원회(KBO) 수장에 오른 허구연 총재가 지난 9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프로야구 40년을 돌아본 뒤 향후 계획을 말하고 있다. 그는 “지금 프로야구는 최대 위기”라며 “프로야구 콘텐츠의 가치를 높이고, 팬을 우선하는 야구로 인기를 되살리겠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1951년생. 부산 대신초·경남중·경남고를 거쳐 고려대와 한일은행에서 야구 선수로 뛰었다. 한국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MBC 해설위원을 맡아 지난해까지 활동했다. ‘대쓰요’(됐어요), ‘베나구’(변화구), ‘누헨진’(류현진) 등 특유의 발음과 재미있는 해설로 인기를 끌었다. 1985년 청보 핀토스 감독을 맡고, 1987년부터 3년간 롯데 자이언츠 코치를 지내기도 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칙위원장, 기술위원회 부위원장, 야구발전위원장 등도 거쳤다. 야구 인프라를 강조하는 발언을 많이 해 ‘허프라’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 3월 야구인 출신 첫 KBO 총재로 선출됐다.

산업화·국제화·인프라 과제 해결이 급선무
MZ세대와 적극 소통, 돌아선 마음 되돌릴 것
콘텐츠의 가치 높이는 일도 무엇보다 중요
야구만 잘 하는 선수 시대 끝…‘4불’ 지켜야

전두환 5공화국 시절인 1982년 3월27일. 지금은 사라진 성동원두,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한국 프로야구가 개막의 축포를 울렸다. 역시나 지금은 없는 MBC 청룡 구단의 이종도 선수가 끝내기 만루홈런을 날려 강렬한 인상을 남긴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이 거기서 열렸다. 그 후로 40년이 흘렀다.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는 모토로 출발한 프로야구는 팬들의 인기를 모으며 국내 프로스포츠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의 산증인이다. 원년부터 방송 해설위원으로 활동했고, 감독·코치 생활도 경험했다. 줄곧 선수와 팬, 시청자 곁에서 프로야구 현장을 지킨 것이다. 40년 역사를 함께한 그의 경험, 분석과 정보는 그 자체로 한국 프로야구사의 박물관과 같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지난 3월 말 야구인 출신 중 처음으로 KBO 총재를 맡으면서 활동 반경을 또 넓혔다. 선수 빼고는 프로야구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는 셈이다. 리그 운영을 총괄해 책임지고 프로야구가 발전할 방안을 결정·실행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 총재실에서 그를 만났다.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와 현주소, 그리고 나아가야 할 길 등에 대해 물었다. 뜻밖에도 그는 프로야구의 현재 상황을 위기로 진단하면서 산업화·국제화·인프라 확충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할 일이 무척 많은 데다, 모두 시급한 사안들이라 바쁘게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열흘 일정의 미국 출장을 앞두고 급하게 이뤄졌다. 허 총재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를 만나 한국 프로야구 개막전 미국 개최, 한·미 올스타전 국내 개최 등 국제 교류 방안을 논의한다고 했다.

- 올해가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미국 146년, 일본 72년에 비하면 짧다고 할 수 있지만, 짧지 않은 기간인데.

“인생으로 치면 불혹이다. 1982년에,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프로야구가 출범한 게 사실이다. 과연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고교·실업 등 아마추어 야구가 워낙 인기 있던 시절이라 프로야구에 대한 회의론과 불안감이 있었다. 그런데도 40년을 이어온 건 장족의 발전이라고 본다. 부침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며 여기까지 왔다.”

- 프로야구 역사를 기간별로 나눠볼 수 있나. 중요한 계기가 있었던 시기는.

“프로야구 초창기에 컬러TV가 나오고 고교 야구 붐이 이어지며 프로야구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1990년대 해마다 300만~400만명의 관중이 들어오다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전후에 200만명대로 뚝 떨어졌다. 이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등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기사회생해 2017년 840만명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성장했다. 그 후 관중이 감소세로 돌아선 와중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해 2020년 무관중 경기를 치러야 했다.”

한국 야구대표팀 선수들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 쿠바전에서 승리한 뒤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 야구대표팀 선수들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 쿠바전에서 승리한 뒤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프로야구 40년 역사 중 가장 결정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베이징 올림픽 우승이다. 국제적으로 한국 야구의 위상을 높였다. 국내에 야구 붐을 되살려 팬, 관중을 폭넓게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 그렇다면 한국 프로야구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는가.

“복합적인 위기 상황이다. 아직도 스포츠 산업으로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고, 또 그게 언제 이뤄질지 전망도 밝지 않은 게 현실이다. 대기업들이 홍보 목적으로 구단을 운영해온 체제가 한계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더 재미있게 즐길 거리가 많은 MZ세대가 야구장을 찾지 않는다. 거기에 국제대회 성적이 떨어지고 선수들의 일탈 행위가 잦아진 것도 야구가 외면당하는 위기를 불렀다. 코로나19로 지난 2년간 관중이 없었던 점도 위기 요인이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프로야구는 지금 최대 위기···팬 퍼스트 아니면 희망이 없다”

- 총재 취임 때 ‘9회말 1사 만루에 등판한 구원투수의 심정’이라고 했다.

“쿠바를 상대로 3-2로 앞선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때 마지막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말한 것이다. 취임하고 보니 그 이상의 위기감이 느껴졌다.”

- 코로나19로 발길이 끊겼던 야구장 관중이 올해 얼마나 돌아오고 있나.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728만6008명)에 비해 24% 줄었다. 20% 이하로 감소폭을 좁히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줄어든 관중을 어떻게 회복할지가 총재로서 떠안은 큰 숙제다.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키고, 경기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기본이다. 선수들의 일탈 행위가 더 나와서도 안 된다. 매사에 팬이 먼저인 ‘팬 퍼스트’가 제일 원칙이다.”

- 최근 ‘MZ위원회’를 발족시킨 것도 그런 이유인가.

“공모 과정을 거친 MZ세대 야구팬 4명과 분야별 전문가 등을 포함해 19명으로 구성했다. 이들과 수시로 소통하며 다양한 의견과 제안을 받아 리그 운영과 발전 방안에 적극 반영할 계획이다. MZ세대와의 소통이 앞으로 프로야구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2008년 8월23일 중국 베이징 우커쑹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과 쿠바의 야구 결승전. 이승엽의 투런 홈런과 류현진의 역투에 힘입어 3-2로 앞서가던 한국은 9회말 1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다. 한방에 승부가 뒤집힐 수 있는 고비라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2022년 한국 프로야구를 이 상황에 빗대 말한 허 총재는 재미와 감동을 되찾아 위기 타개에 성공할 수 있을까.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명장면, 구원투수 정대현이 쿠바 강타자 율리에스키 구리엘을 유격수 앞 병살타로 잡아낸 금메달의 순간처럼.

- 총재가 된 뒤 바쁘게 뛰고 있다.

“논의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참 많다. 현안을 부지런히 챙기고 있다. 경기력, 스트라이크존부터 국제대회 준비, 지방자치단체와 인프라 구축 협의에 이르기까지. 어제도 강원 횡성군수를 만나 ‘횡성베이스볼파크’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앞으로 30여곳의 지자체장을 만날 계획이다. 야구가 있는 곳의 지자체장은 모두 만나려 한다. 정부 유관 부처는 물론이다.”

- 평소 강조해온 야구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한 일인가.

“KBO리그의 대도시 홈구장뿐 아니라 지방에도 야구를 할 수 있는 시설이 늘어나야 한다. 2군 선수들이 전지훈련을 할 수 있는 ‘남해안 벨트’ 건립을 구상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야구센터’를 공모하는 방안도 준비 중이다. 이런 인프라가 생기면 프로뿐 아니라 아마추어 동호인 팀의 야구 저변이 확대된다. 좋은 선수와 팀이 많아지지 않겠나. 야구 인프라가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알리고 설득하는 일이 총재의 몫이다.”

- 인프라가 확충되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보는 건가.

“840만명의 역대 최다 관중이 찾아온 2017년에 간과된 부분이 있다. 9구단이 10구단으로 늘어났고 야구장 규모가 커진 것이다. 페넌트레이스 경기 수가 144경기로 많아진 것도 요인이다. 인프라가 그만큼 중요하다. 그때, 방심하면 곧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야구계가 안이하게 생각했다. 가만히 있어도 인기를 계속 누릴 것이라고 자만한 게 문제였다. 물론 인프라가 구축돼도 프로야구 산업화가 이뤄지지 못하면 발전하기 어렵다.”

- 프로야구 산업화에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총재가 되겠다고 했는데.

“구단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통합 마케팅을 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구단들을 이해시켜 통합 마케팅을 하도록 유도하는 게 우선이다. 프로야구 산업화는 수익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구단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 구단이 더 많다. 적자폭이 크기 때문이다. 구단들이 자생력을 갖추는 게 급선무다. 스포츠 산업화를 가로막고 있는 규제도 풀어야 한다. 이는 야구뿐 아니라 프로스포츠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사안들에 대해 앞장서서 건의하고 풀어나가겠다는 얘기다.”

- 프로야구 콘텐츠의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고도 했는데.

“구장을 보유해 막대한 광고 수익을 가져가는 지자체들이 야구 콘텐츠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으면 한다. 공공재로 볼 수도 있다. 한 시즌 72번의 경기가 홈구장에서 잔치를 벌이는 게 아닌가. 미국 뉴욕 양키스는 40년에 400달러, 1년에 10달러를 시에 내고 구장을 사용한다고 한다. 뉴욕시가 그 비싼 땅을 왜 그리 싸게 주겠나. 양키스가 뉴욕을 떠난다는 걸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콘텐츠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 내년에 WBC 대회가 모처럼 열린다. 국제대회 성적도 팬심을 돌아오게 하는 주요한 요인인데.

“4년마다 열리는 WBC의 이전 두 대회에서 예선 탈락하고, 지난해 도쿄 올림픽에서도 좋지 않은 성적을 낸 게 야구팬들의 관심을 떨어뜨린 게 사실이다. WBC에 한국계 선수 출전이 가능하기에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해당 선수들의 정보를 탐색하고 참가 협의를 할 계획이다. 예선 통과가 큰 숙제다. 국내 인기나 옛날 국제대회 성과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 국제 교류도 활발히 추진하는데.

“프로야구 한·일전을 정기적으로 자주 열고자 한다. 2024년에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국내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그리고 쉽지는 않지만 2024년이나 이르면 내년에 한국 구단들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프로야구 개막전을 여는 방안도 검토 단계에 있다. 국내 참가 구단을 정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일이 남아 있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와도 협의 중이다.”

그는 총재 취임 전날 프로야구 전 선수들에게 문자메시지로 인사를 미리 전했다. “지난 2년간 야구계가 매우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면서 “프로다운 높은 수준의 기량을 선보이고 진정성 있는 팬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하자”고 격려했다. 이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4불(음주운전·승부조작·성범죄·약물복용)을 금지 사항으로 특별히 지켜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인프라·산업화·국제화를 말한 그는 선수들이 인성을 갖추는 일도 그만큼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 선수들에게 당부를 전한 이유는.

“야구만 잘하는 선수의 시대는 끝났다는 걸 재차 알려주고 싶었다. 라이벌전에서 이기는 것만이 최고였던 시대가 지금은 아니지 않나. 누구 하나 사고를 치면 팬들이 떠나가고 야구계 전체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으면 한다. 가뜩이나 선수들 또래의 젊은 세대가 요즘 굉장히 힘들지 않나. 취업도 어렵고…. 공정을 저버리고,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선수는 젊은 팬들부터 용납 못한다. 선수들에게 일탈을 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인식을 각인하려 한다.”

- 어떤 야구를 선보이는 게 목표인가.

“깨끗하고 재미있는 야구에 앞서 팬과 함께하는 야구가 아니면 희망이 없다는 게 먼저다. 기술, 매너, 서비스에 앞선 ‘팬 퍼스트’ 야구다.”

차준철 논설위원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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