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

반다나 시바 “개인 제트기 타는 사람들이 녹색 해법 제시하고 있다”

런던 | 이창준 기자    런던 | 김경학 기자
반다나 시바 박사(71)가 지난달 12일 런던 퀸 엘리자베스 2세 센터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런던|이창준 기자 사진 크게보기

반다나 시바 박사(71)가 지난달 12일 런던 퀸 엘리자베스 2세 센터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런던|이창준 기자

반다나 시바 박사(71)는 40년간 토종 씨앗과 생물 다양성을 강조하는 종자 주권 운동을 펼쳐왔다. 자주농업을 강조하면서 국경을 넘나들며 거대 농업기업에 맞서 투쟁했다. 농업이 전체 산업의 35%를 차지하는 고향 인도에서는 ‘나브다냐(Navdanya)’라는 종자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이 운동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농민 운동과도 연이 있다. 시바 박사는 2003년 농민 이경해씨가 세계무역기구(WTO)의 농업 개방 협상에 반대하며 자결했을 때 이 협상을 미국 농산물 수출기업 카길의 이해를 대변하는 ‘카길 협정’이라고 앞장서 비판했다. 그해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환경 영웅’으로 선정했다. 2010년에는 경제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7인’에 들기도 했다.

시바 박사는 농업 분야에서 ‘상위 1%’ 거대 자본과 대기업이 생산 및 유통 전반을 독식하는 구조를 비판한다. 최근 이 같은 독식 구조가 농업뿐 아니라 세계 경제 전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거대 자본이 빠르게 세를 불릴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금융 시스템과 과학 기술을 ‘1%의 앞잡이’로 지목한다. 그는 “노동 시장이 아닌 ‘글로벌 도박판’에서 부가 창출되면서 세계는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1%의 횡포에 맞서려면 우선 무분별한 개발을 멈춰 환경을 보호하고, 지역 단위의 자급경제를 형성해 거대 자본이나 대기업이 영세 농민·상인들의 일터를 빼앗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시바 박사의 주장이다.

지난달 12일 영국 런던 퀸 엘리자베스 2세 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반다나 시바 박사(71)가 지난달 12일 런던 퀸 엘리자베스 2세 센터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런던|이창준 기자 사진 크게보기

반다나 시바 박사(71)가 지난달 12일 런던 퀸 엘리자베스 2세 센터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런던|이창준 기자

-세계 곳곳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가장 집중하는 일은.

“요즘은 주로 고향(인도) 집에서 농민들과 일하고 있다. 지역 사회와 농민들의 생계를 위해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는 운동을 한다. 가끔 출장을 다니는데, 지금은 국제동물복지단체 CIWF(Compassion in World Farming)에서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하려고 런던에 왔다. 출장 목적은 그때마다 다르다. 유전자변형생물(GMO) 관련 토론에 참석하려고 독일에 가기도 했고 유럽의회가 주최하는 탈성장 회의(Degrowth Conference)에서 에코페미니즘을 강의해 달라고 초청받기도 했다. 주로 식량과 농업에 관련된 이슈에 몰두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기간과 비교하면 요새 더 바빠졌나.

“그렇다. 코로나19 유행 당시에는 출장을 다닐 수 없었다. 오히려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는데, 그 기간에 책도 썼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그들을 병들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는 내용이다. (책에서) 식량과 건강은 연결돼있고, 대기업들은 삶의 모든 분야를 장악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어쨌든 요새는 부르는 곳이 많은데, 다 참석할 수 없으니 신중히 선택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은 자본가들이 막대한 부를 증대시키는 계기가 됐다. 동시에 팬데믹 기간 급증한 부채로 세계 경제는 매우 위태로워졌다. 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2015년에 책 <누가 지구를 망치는가(Oneness VS. 1%)>를 쓰면서 세계의 권력 구조를 살펴봤다. 대기업이 세계 1%의 위치에 있었다. 그들은 자산운용사라고 하는 과거엔 없던 기관에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넣어두고 있었다. 예전에는 은행이 모든 돈을 가지고 있었다. 민간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뱅가드그룹이 전 세계 경제 모델을 주도하고 있다. 블랙록의 대표(래리 핑크)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심지어 전쟁 중에도 나라 경제를 운영하는 방법을 논의했다. 코로나19 유행 기간 동안 대기업은 지역의 시장 상인들에게 문을 닫으라고 사실상 압박했다. 그 사이에 ‘아마존 프레시(아마존이 운영하는 식료품 가게)’ 배달원들은 계속해서 늘었다. 그렇게 코로나19 대유행 2년 동안 억만장자들은 계속해서 부를 늘렸고, 그들의 시장 지배력은 더 커졌다. 세계화 과정에서 자본과 금융이 결합되면서 새로운 투자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이제 미디어와 교육, 농업 등 다른 경제 부문을 장악하고 있다. 계속해서 성장해 온 인류는 이제 성장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 듯하다. 여기서 생겨난 거대 금융 자본은 모든 지역 경제를 질식시켜 없애버리려고 하고 있다.”

기술을 추상적으로 생각하면 기술이 도구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유리컵은 물을 담는 도구지, 물을 만들지 않는다. 물은 자연에서, 샘에서, 우물에서 나온다.

-세계 경제는 상위 1% 부자가 좌우한다고 했다. 챗 GPT 개발 이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데, 인공지능 모델 개발에 관여하고 알고리즘을 결정하는 이들은 0.1%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대한 평가는.

“인공적인 것으로 자연을 대체하려고 할 때마다 사회에 문제가 발생했다. 유기농법 대신 합성비료를 쓰기 시작하면서 토양은 황폐화하고 온실가스가 생겨났으며, 물은 오염됐다. GMO가 낳은 재앙은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다. 인공지능은 오직 분석적인 형태로만 존재한다. 협력이나 연민, 돌봄 의식은 없다. 그저 계산하고 기계에 저장할 뿐이다. 그럼 기계는 몇 가지 단계만 학습한다. 챗 GPT는 모든 문서를 읽고 그걸 잘라붙이기하는 기계일 뿐이다. 그게 인간의 지능을 대체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인공비료나 GMO처럼 대체하는 척, 더 우월한 척만 할 뿐이다. 그 도구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간의 지능이 필요하다. 그래야 인공지능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드론, 무인 콤바인 등 농업에서도 최근 인공지능 기술이 쓰이고 있다. 기술 개발로 생산성이 높아지면 식량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있는데.

“농업 기술이 생산성을 늘렸을까. 그렇지 않다. 생물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화학비료를 통해 한 가지 품종을 기르는 것보다 생산성이 더 높다. 그럼 기술이 발달하면 더 좋은 품질의 수확물을 얻을 수 있을까. 역시 그렇지 않다. 종자에 대한 최신 연구를 보면 생물 다양성이 확보된 씨앗이 더 영양소가 풍부했다. 기술을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기술이 도구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유리컵은 물을 담는 도구지, 물을 만들지 않는다. 물은 자연에서, 샘에서, 우물에서 나온다. 특히 세계화 이후에는 원래 있던 것을 바꿔주기만 하는 도구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도구로 포장하려는 시도가 늘 있어왔다. 유전공학이 우려스러운 점도 이 지점이다. 유전공학으로 새로운 종자를 만든다면 (종자) 기업들은 로열티를 받아도 된다. 하지만 기업들은 종자를 만들지 않는다. 그저 원래 있던 종자에 독성 유전자 하나를 결합시킬 뿐이다. 기술은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환상만 심어줄 뿐이다. 화려한 상품보다 자연의 공생과 조화가 더 중요하다. 협력하면 더 풍요로워질 수 있지만 경쟁하면 더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반다나 시바 박사(71)가 지난달 12일 런던 퀸 엘리자베스 2세 센터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런던|이창준 기자 사진 크게보기

반다나 시바 박사(71)가 지난달 12일 런던 퀸 엘리자베스 2세 센터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런던|이창준 기자

-책 <에코 페미니즘>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다. 하지만 자본주의 가부장제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성이 동등한 존재로 대우받지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자본주의 가부장제만 세를 늘리고 있다는 것은 틀린 생각이다. 자본주의 가부장제가 강화하는 동안 여성 운동처럼 다른 이데올로기 역시 얼마나 더 성장했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다만 왜 여전히 자본주의 가부장제가 위세를 떨치는지를 얘기하자면,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여성이나 자연,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데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결정적으로 그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 자본주의 가부장제는 탐욕의 경제에 우월주의가 합쳐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연을 죽어있는 것으로 보는 사람은 천연자원을 맘대로 착취해갈 것이고, 여성을 그저 대상으로 보는 사람은 여성을 통제하고 여성성을 사고팔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생계유지 수준에서 친환경적 경제 활동을 이어가자는 ‘자급주의 경제’를 강조하는 것으로 안다. 자본주의 가부장제는 반대로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인류가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자본주의나 자본, 화폐의 구조는 사실 실물이 없는 개념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한 부는 자연의 세계다. 진정한 부는 사람들이 일을 해서 만들어 내는 것이고 모두가 함께 일하는 사회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통해서 자급주의 경제는 더 튼튼해진다. 그것이 우리가 자본주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에코 페미니즘의 자급주의와 탈성장론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도 되는가.

“에코 페미니즘과 탈성장은 모두 살아있는 경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탈성장 관점에 보면 GDP 같은 지표로만 평가되는 자본주의는 무한한 성장, 무한한 자연 착취가 가능하다는 환상에 빠진 구조다. 탈성장은 그래서 금융 중심의 성장 경제를 멈추고 생태 경제와 사회 경제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코페미니즘 역시 자연을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우리가 자연의 일부로서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기술의 좋고 나쁨을 말하기 전에 기술의 안전성을 어떻게 평가하고 결과에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굳건하게 지탱하는 상위 1%의 탐욕은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대중의 저항과 투쟁, 연대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막연히 그들이 스스로 변화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나.

“그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민주주의, 새로운 종류의 정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 자연을 바탕으로 경제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다. 모든 사람뿐 아니라 자연의 권리도 인정하는 것이다. 일단 모두가 참여하는 정치 체제가 필요하다. 대의민주주의는 실패하고 있다. 대기업과 거대 자본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기업이 선거에서 후보자에게 돈을 대주는 등 선거 결과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있다. 그렇게 선거제를 파괴시키고 있으면서 표현의 자유라고 둘러댄다. 우리는 직접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일상에서 시작해야 한다. 작물 재배 방식, 먹는 음식을 고르는 것, 서로 돌보는 것. 코로나19 유행 동안 사람들은 사실상 정부가 감염자들을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서로를 돌봤다. 시위도 필요하다. 상위 1%가 나머지 99%의 삶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공허한 유토피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종자 기업들은 이미 80년대에 모든 곡식 종자를 자신들이 다 장악할 수 있다고 했다. 모든 종자는 GMO가 될 것이고 모든 농부들은 그 종자를 통해 재배할 거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투쟁을 이어왔고, 오늘날 아직 수천 종류의 다양한 곡식 종자를 확보하고 있다.”

-무분별한 자원 개발은 코로나19 유행을 초래했지만, 고도의 과학기술 덕에 코로나19 백신이 신속히 나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기술 개발과 성장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나.

“고도로 발달된 기술이 백신 개발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그 안전성은 별개로 계속 점검해야 한다. 지름길은 없다. 그렇지 않으면 부작용이 있을 것이다. 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은 점점 더 명백해지고 있다. 나는 GMO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 결과 UN과 함께 생물안전에 관한 국제법을 만들었다. 새로운 특성을 가진 GMO를 만들면 그것이 생태학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야 한다. 기술은 도구에 불과하다. ‘기술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는 주장하면 도구에 지나치게 큰 힘을 실어주는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결국 기술을 통해 얻는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권력은 도구의 소유자에게 집중된다. 기술의 좋고 나쁨을 말하기 전에 기술의 안전성을 어떻게 평가하고 결과에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이제 컴퓨터에서 정자와 난자를 조합해 인공 배아를 만드는 기술이 가능하다. 그럼 사회가 수백만 개의 인공 배아를 생산해야 할까? 아니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얼마나 생산할지 결정해야 할까? 자율적인 기술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술의 사용은 민주적으로 결정돼야지, 기술을 만든 사람들에게 맡겨둬선 안된다.”

-화이자와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제약회사는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들과 이들의 백신 기술은 인류의 구원자로 봐야 할까, 99%를 착취하는 1%로 봐야 할까.

“빌 게이츠는 백신이 그가 한 최고의 투자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화이자사를 백신 개발사로만 생각하지만 화이자는 농약과 살충제를 만들고 있으며 GMO 식품을 만드는 몬산토사를 소유하기도 했다. 화이자사가 하는 일 중에서 사람을 죽이는 분야는 보지 못한 채 백신에만 집중한다면 큰 그림을 놓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 삶을 통제하기 원한다.”

반다나 시바 박사(71)가 지난달 12일 런던 퀸 엘리자베스 2세 센터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런던|이창준 기자 사진 크게보기

반다나 시바 박사(71)가 지난달 12일 런던 퀸 엘리자베스 2세 센터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런던|이창준 기자

-과거와 같은 고도의 경제 성장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고도의 경제 성장을 통해 악화하는 이상 기후와 부의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상 기후는 지구의 신진대사를 파괴하고 있다. 생명체로서 지구는 40억 년에 걸쳐 현재의 기후 상태를 만들었는데 이산화탄소 농도는 98%에서 0.03%로 줄어들었다. 식물의 생물권(biosphere·지구상의 생물과 환경을 아우르는 생태 시스템)이 한 일이다. 그런데 지난 100동안 인류는 석유를 쓰면서 대기를 오염시켰고 급격한 기후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이제 개인 제트기를 타고 다니고 비료 공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유전공학이나 지구공학의 이름으로 기후위기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른바 ‘녹색 제국주의’는 날씨, 식량, 지구 생태계를 통제하면서 자신들이 만든 기후위기를 통해 오히려 이익을 얻고자 한다. ‘그린 워싱(위장환경주의)’이 그 예다. 그들은 ‘나는 계속 개인 제트기를 탈 것이고, 거기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려면 당신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진정한 기후위기 해결은 유기농법이나 생물 다양성 확보를 통해 가능하다.”

-그렇다면 ‘녹색 성장’도 불가능한 것으로 보나.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녹색 성장은 자연과 함께 해야 한다. 지금의 방식은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만든 위기를 통해 더 많은 돈을 벌려는 방식이다. 실제 생태학적 해결책은 자연 속에서 전개해야 한다.”

개인 제트기를 타고 다니고 비료 공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유전공학이나 지구공학의 이름으로 기후위기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제로 탄소 도시 ‘네옴시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어떻게 평가하나. 네옴시티 모델이 다른 곳에서도 이어져야 한다고 보나.

“제로 탄소는 비과학적인 용어다. 어떤 경우에서든 탄소는 발생한다. 나무와 흙, 인간은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살아있는 탄소다. 우리가 진짜 줄여야 할 것은 죽은 탄소, 즉 화석 연료에서 나오는 탄소다. 살아있는 탄소와 죽은 탄소의 간극을 줄이고, 살아있는 탄소를 더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수치상 제로 탄소 도시를 만든다고 쳐도, 거기서 여전히 거대 산업을 통해 만들어진 음식을 소비하게 되면 이미 지구 온실가스 50%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꼴이 된다. 반면 지역 농업과 생태 농업을 하는 곳에서는 사람에게 배출되는 탄소가 식물을 통해 다시 토양으로 들어간다. 이미 지구 농지의 10%는 생태 농업으로 전환돼 있다. 이를 통해서도 우리는 충분히 탄소 배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굳이 메가 시티를 건설할 필요는 없다.”

-일론 머스크나 스티븐 호킹은 외계 행성을 찾아 떠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류가 아예 다른 행성으로 떠나지 않는다면 생태계가 균형을 되찾지 못할 것이라고 보나.

“호킹은 남은 선택지가 두 가지라고 했다. 다른 행성으로 탈출하거나 멸종하거나. 그는 지구에 머무른다는 중요한 선택지를 간과했다. 우리는 지구 시민으로 지구에 태어났다. 지구를 돌보는 것이 우리 의무다. 지구를 버리고 화성에 가는 프로젝트라니, 오만하다. 지구에서 탈출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다. 게다가 화성 이주를 꿈꾸는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는 이를 상업적으로 접근한다. 화성은 식량을 재배할 수 없는 곳인데, 머스크는 ‘피자헛을 화성으로 보내겠다’고만 하고 있다. 지구가 살아있는 유일한 행성이다. 그걸 돌보는 것이 우리의 윤리적, 생태학적 의무다.”

반다나 시바 박사(71)가 지난달 12일 런던 퀸 엘리자베스 2세 센터에서 기자와 인터뷰한 뒤 자세를 취하고 있다.  런던|이창준 기자 사진 크게보기

반다나 시바 박사(71)가 지난달 12일 런던 퀸 엘리자베스 2세 센터에서 기자와 인터뷰한 뒤 자세를 취하고 있다. 런던|이창준 기자

-‘1%의 앞잡이’로 금융과 기술을 지목했다. 그러나 금융 시스템과 기술 발전을 배제한 채 인류의 미래를 그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 1%의 앞잡이인 금융과 기술을 99%의 미래와 조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가.

“금융 및 기술은 1%가 쓰는 도구다. 월스트리트가 무너졌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계기로 ‘돈으로 돈을 버는’ 새로운 방법을 찾은 1% 말이다. 그들은 실체가 없는 것에서 수익을 만들어 내면서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기술은 더 발달돼 금융 거래는 이제 초 단위로 오간다. 정상적인 부는 노동을 통해 창출돼야 하는데 지금은 ‘글로벌 도박판’ 속에서 돈이 벌리고 있다. 이런 시스템은 자주 무너진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 2008년에도 그랬고 미국은 지금도 그렇다. 금융과 기술은 신뢰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상위 1%가 사람들을 통제하고 감시하는데 쓰이는 도구일 뿐이다. 물론 이런 도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도구를 어떻게 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금융과 기술이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선 안된다. 금융과 기술은 더 고차원적인 목적을 위해 잘 쓰여야 한다. 결국 정부가 그 도구를 잘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관련 법률이 통과되고 있다. 물론 각 국가 상황에 따라 법제화는 일정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일단 개인 수준에서 우리는 어떤 도구가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지 인식하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인도 중앙은행(RBI)이 지하 경제를 근절하기 위해 시행한 고액권 화폐 유통 중단 조치를 두고 ‘강요된 디지털화’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디지털 금융은 다수의 거래를 편리하게 하는 순기능도 있는데.

“그 조치는 아무런 준비 없이 4시간 만에 결정됐다. 이점을 비판한 것이다. RBI는 이 조치가 스위스 은행 계좌에 있는 검은 돈을 인도로 다시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RBI는 스위스 은행에서 검은 돈 1루피조차 찾지 못했다. 그런 반면 이 조치는 인도인 90%의 생계에 피해를 입혔다. 인도인 90%는 인터넷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문인식, 홍채인식은 먼 얘기다. 디지털 금융이 현금보다 더 편할 순 있다. 하지만 가난한 국가에서는 빠른 네트워크 기술에 빈곤 계층에게 가닿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금융을 강제하면 그들은 선택권이 없는 상태로 내몰리게 된다.”

-지구의 파괴를 막고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성장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장이 멈춘다면 금융자산에 투자하고 있는 연금은 어떻게 될까. 연금에 가입한 국민들은 분명 피해를 보게 될 텐데.

“연금은 국민들이 일상에서 일한 몫을 일부 국가를 위해 쓰라고 건네주면, 그들이 늙어서 일할 수 없을 때 국가가 그 대가로 돈을 되돌려줘 국민들을 돌본다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일할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돌볼 것인지 그 목적에 더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연금 시스템이 성장에만 의존하게 되면 결국 착취라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부자들은 자연을 착취해 사회를 만들고, 다시 사회를 착취해 경제 성장을 이끌어 냈다. 그런데 현재의 금융 시스템에서는 성장의 결과인 부가 부자들의 손에서 다시 사회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연금 역시 이 금융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어서 일반 시민들이 받을 연금도 부자들에게 빼앗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 자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는 것이 꼭 필요하다. 상위 1%와 나머지 99%가 경쟁하면서 99%에게만 부담을 지우는 현재 경제 체제는 지속될 수 없다. 언젠가는 상위 1%도 제 몫을 지불해야 한다. 그게 가능해진다면 그 재원을 통해 아이들과 노인들, 다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복지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마을·지역 단위의 자급경제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해볼 수 있다. 이런 시도가 이어진다면 국가의 경제 체질 자체를 조금씩 바꿔갈 것이다.

-아직까지 세계 경제 흐름은 성장 일변도로 치우쳐있다.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나. 국가나 지방 정부 중에 이상적으로 운영되는 곳이 있다면.

“옳은 길로 가려는 국가들도 있지만 1%의 자본가들 그걸 방해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부탄 정부와 함께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GDP로 자신들을 정의하지 않으려 했다. 성장이 아닌 행복을 측정하려고 시도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GNH) 지수를 만들어냈다. 멕시코 정부도 GMO를 제한하려고 한다. 에콰도르 정부는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포함시켰으며 아마존 대사직도 만들어 몇년간 운영하기도 했다. 아마존의 삼림과 그 밑에 매장된 석유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러자 곳곳에서 그들을 공격했다. 미국은 멕시코의 GMO 규제를 방해했으며 에콰도르 정부도 ‘어떻게 석유를 묵혀둘 수 있느냐’는 식의 공격을 받았다. 소규모 마을 단위나 보다 큰 지역 단위, 심지어 국가 단위로도 많은 시도가 이어지는 것을 봤다. 실패하기도 하고 또 새로운 시도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시도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

-마을이나 지역 단위를 넘어서 국가 단위로 공유지를 만들어내고 여기에 글로벌 대기업이 개입할 수 없는 자급경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 단위로 경제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국가 단위 변화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국가 단위의 시도도 가능하다. 다만 지금은 상위 1% 부자들이 정부까지 쥐락펴락하고 있는 상황이라 녹록지 않기는 하다. 그렇다면 일단 국가보다 더 낮은 단위에서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다. 먼저 우리가 마을·지역 단위의 자급경제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해야 하는 이유다. 이런 시도가 이어진다면 국가의 경제 체질 자체를 조금씩 바꿔갈 것이고, 결국 더 많은 생태적·사회적 면역 체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한국에 많은 팬들이 생겼다. 6월28일 <경향포럼>에 참석하게 됐는데, 한국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경향포럼>에서는 지난 40년 동안 집중해 온 일을 설명할 것이다. 자연과 일하면서 지역 단위의 자급경제를 구축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이 건강해지는 것 말이다. 또 모두가 사회의 부를 공유하는 순환 경제에 대해서도 설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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