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일 아기 안고 국회 출근한 용혜인 의원 “이것이 끝이 아니다"

김상범 기자

[스팟+터뷰] 정치권 안팎에서 주목해 볼 만한 인물을 짧지만 깊이있게 인터뷰하는 코너입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생후 59일 아들과 함께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출산 후 첫 등원’을 해 본회의장을 나오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생후 59일 아들과 함께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출산 후 첫 등원’을 해 본회의장을 나오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회아이 동반법’ 상징성 주목해달라”


“많은 여성에게 임신은 기쁨이기도 하지만 고민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내가 정말 잘 키울 수 있을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하지? 육아는 누가 도와줄 수 있을까? 돈이 많이 들지 않을까?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고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돌봄의 대상이 생긴다는 것은 그 이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고, 불편하게 여기도록 합니다. 지난 5월 아들 튼튼이(태명)를 낳은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도 그랬습니다. 용 의원은 5일 생후 59일 된 아이를 데리고 자신의 ‘직장’인 국회에 출산 이후 처음으로 출근했습니다. ‘국회 아이 동반법’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국회 부의장을 만나고,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혹여 ‘아이가 깨지는 않을까, 배고프다고 울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머릿속 한 켠을 채웠다고 합니다.

“수유가 필요한 24개월 이하의 영아인 자녀와 함께 회의장에 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용 의원이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의 내용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아이를 둔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을 지원하는 내용이지만, 그는 “이것이 끝이 아니다”라고 강조합니다.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출산과 함께 경력이 끝나버리는 일이 허다합니다. 용 의원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20여분간의 전화 인터뷰에서, 용 의원은 국회에서의 작은 변화가 모든 육아 당사자들에게도 가닿는 계기가 되는 상징성에 주목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스피커폰으로 해도 되겠죠? 아기 밥 먹이는 중이라서요.”

-괜찮습니다. 출산 후 첫 국회 출근이었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을 지나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아이가 울까 매우 걱정이었죠. 밖에 나갈 때마다 그런 걱정을 해요. 오늘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아이가 깨지 않고 울지 않도록 밥 먹이는 시간을 계산했어요. 국회에 60일 만에 출근을 했는데, 막막한 마음이 솔직히 많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의정활동을 어떻게 조화롭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해 왔는데, 오늘 출근을 하니 현실로 다가오더라고요.”

-출산 직후에는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평소에 낙관적인 편이어서 걱정을 많이 안 해 봤는데, 경험해 보지 않은 생활, 삶의 중심 자체가 바뀐다는 두려움이 컸어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압박감도 컸고요. 엄마들이 아기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집에 틀어박혀서 사회와 단절돼 ‘독박 육아’에 내몰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함께 호흡하면서 살 수 있는 방안을 많이 고민했습니다.”

-오늘 직접 국회를 방문해 보니 어떤 점이 가장 불편하던가요.

“국회에는 수유실이 총 7개가 있어요.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보좌진들과 국회 직원들도 쓸 수 있는 곳인데, 편히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니더라고요. 예를 들어 국회 본청 수유실은 1인용 소파 하나만 놓여 있어요. 딱 1명만 쓸 수 있는 거죠. 세면대는 있지만 비누가 없고, 기저귀 교환대는 있지만 기저귀를 버릴 수 있는 쓰레기통은 없었고요. 정말 최소한의 물품만 구비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국회 어린이집은 국내에서 가장 좋은 시설을 자랑한다고 알려져 있고, 그래서 국회 공무원에 대한 특혜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실 국회는 어린이집이 3개나 있고 시설도 잘 돼 있는 편이에요. 직장 가까운 곳에서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공간이 대기업·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영세사업장에 다니는 부모들에게도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육·돌봄의 공공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하향 평준화’가 아닌 최소한 돌봄에 필요한 시설은 모두가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국회 아이 동반법을 발의하셨습니다.

“여성 의원들의 의정활동만 지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출산·육아를 할 시기의 젊은 남성 의원들도 필요한 내용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육아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의원의 권리와 참정권이 제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취지에요.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일터에서, 특히 영세 사업장에 근무하는 여성들은 육아휴직은커녕 임신과 동시에 해고되는 경우도 정말 많아요. 국회 아이 동반법은 변화를 위한 시작이라고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국회가 법과 제도를 만드는 공간인데, 이곳에서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조건을 만드는 것의 상징적 의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61명이나 되는 꽤 많은 의원들이 법안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금까지 국회 안에서 육아와 의정활동을 병행하는 데 관심 없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뒤집어보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거 아닌가 생각해요. 50~60대 의원들이 대부분이잖아요. 하지만 정치가 서서히 바뀌면서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변화의 시점이라는 데 많은 의원들이 공감해 주신 것 같습니다.”

-어떤 인식 변화를 기대하시나요.

“보통 정치인이라고 하면 양복 입은 중년 남성을 많이 떠올리잖아요. (이 법안을 통해)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됐으면 합니다. 정치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유있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실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조건에서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요. 실질적인 참정권의 확대 측면에서 변화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남편과 2교대로 번갈아 가면서 아이를 보고 있는데, 저도 언젠가 아이를 보면서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상황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겠죠. 지금도 국회의장이 허가하면 충분히 아이와 함께 본회의장에 입장하는 것이 가능해요. 박병석 국회의장님께서도 국회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열려 있으신 분인 만큼 아이와 함께 들어가는 일이 필요할 때 의장님께서 숙고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5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아기를 안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용혜인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5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아기를 안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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