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에 헛도는 정치

유정인·박순봉·심진용 기자

이준석·원희룡 진실 공방 확산

국민의힘 불신의 늪 빠져들어

“대표가 편향적…분란 만들어”

경선 주자들 정책 경쟁은 실종

녹취록에 헛도는 정치

국민의힘이 불신과 갈등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준석 대표의 통화 녹취록 파문은 ‘저거’의 지칭 대상을 둘러싼 진실게임으로 확산했다. 이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간 갈등의 불씨는 지도부와 대선 주자를 거쳐 의원총회로 번졌다. 폭로와 난타전 속에 비전 경쟁은 밀려났다. 6·11 전당대회에서 외친 공존과 변화가 무색해졌다.

18일 국민의힘 분위기는 종일 어수선했다. 이 대표는 전날 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원희룡 전 제주지사와의 지난 10일 통화 녹취록 일부를 공개했다. 이 대표가 ‘윤 전 총장은 곧 정리될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원 전 지사가 전해 논란이 된 통화다. 이 대표와 대선 주자 간 내밀한 통화 녹취록이 공개되는 이례적 상황이다.

녹취록에는 이 대표가 “제가 봤을 때는 지금 저쪽(윤 전 총장 측)에서 입당 과정에서도 그렇게 해가지고 이제 세게 얘기하는 거지 저거 지금 저희하고 여의도연구원 내부 조사하고 안 하겠습니까. 저거 곧 정리됩니다”라고 말한 내용이 담겼다. 이 대표는 ‘저거’가 그간의 갈등을 지칭한다는 입장이지만, 원 전 지사는 반박했다. 원 전 지사는 국회 기자회견에서 “제 기억과 양심을 걸고 말씀드린다”며 “ ‘곧 정리한다’는 이 대표의 발언 대상은 윤석열 후보”라고 주장했다. 말한 사람과 들은 사람의 이야기가 엇갈리는 진실게임이 벌어졌다. 이후 이 대표는 SNS에 “그냥 딱하다”고 썼다. 대선 주자인 하태경 의원이 “어느 나라 대통령이 사적 통화내용을 왜곡해 뒤통수를 치나”라며 원 전 지사의 후보직 사퇴를 촉구했다.

의총에서도 난타전이 계속됐다. 이 대표가 SNS에 “더 이상 당내에서 비전과 정책, 개혁과 혁신이 아닌 다른 주장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적은 지 한나절쯤 지난 때다. 서병수 당 경선준비위원장이 내홍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면서 “왜 이렇게 지도부를 흔드는 것인지 제발 좀 자중해주시라”고 말했다. 곽상도 의원이 “진짜 우리가 원하는 말씀을 거꾸로 하면 안 된다”고 외치는 등 반발이 터져나왔다. 김기현 원내대표가 비공개로 회의를 전환한 뒤에도 서 위원장과 이 대표를 겨냥한 발언이 이어졌다.

한 중진 의원은 “누가 대표를 흔들었느냐”며 “이 대표가 당대표 역할을 하지 않고 편향적 발언과 통화 녹취를 하며 분란을 만들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중진 의원은 “이 대표부터 자중자애해야 한다”면서 “이 대표를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중진과 원내지도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의총을 자주 열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경선버스 출발을 10여일 앞두고 비전 경쟁은 자취를 감췄다. 김웅·김예지·김형동·박수영·신원식·유경준·조태용 등 초선 의원 7명은 호소문을 내고 “갈등과 분열을 보면서 무거운 자괴감을 느낀다”며 “정권교체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임을 잊지 말자. 오늘부로 모두 묻고 함께 미래로 가자”고 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9월 당명을 개정하고 출범하면서 정강정책 첫 줄에 “모두의 내일을 함께 만들어가는 정당”을 선언했다. 이 대표는 대표 수락연설문에서 “이 시간 이후로 상호 간의 논리적인 비판이나 진심 어린 지적이 아닌, 불필요한 욕설과 음모론, 프레임 씌우기 등의 구태에 의존하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 분 한 분이 맞서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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